임현정展(갤러리 연오재)_20160909

연오재

연오재는 2016년 9월, 임현정 개인전 ⟪마음의 섬들⟫을 개최한다. 3작품을 연결한 파노라마 신작을 필두로 9 점의 회화와 소품 작업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풍경을 로드뷰 촬영하듯 널찍이 두루 훑기도, 때로는 조각조각 널브러진 부스러기 이미지에 코 닿을 듯 바짝 다가가 깊게 들여다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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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공간은 알 수 없는 형체들로 가득하지만, 또 도통 알 수 없는 것만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기 마련이고 사람 수만큼 해석도 다양하다.
놀라운 것은 그저 천방지축 중구난방일 것만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는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은 내 속에 갇혀 있는 나만의 마음이 아니라, 거대한 마음의 바다에서 갈라져 흐르는 지류이다. 인류는 조상의 경험과 감각을 물려받아 축적하며, 또 미처 의식하지 못한 체 여럿이 공유하고 대를 이어 전하니, 이는 이른바 ‘집단 무의식’이라 칭한다.
결국 각자의 주관은 공통분모 위의 분자와도 같으니 객관과 주관은 대립이 아니라 모자관계인 셈이다. 임현정은 자신의 경험과 주관을 화폭에 담지만, 그것은 인류 공통의 심상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결과이다.

 

전시와 같은 제목의 작업 <Islands of the Mind>에서 섬들은 저마다 자기 모양새로 비죽배죽 솟아 있지만 바다 속을 되짚어 내려가면 언젠가는 한 몸으로 만난다. 마찬가지로 제각각인 섬의 생김만큼이나 방방곡곡 수많은 상징과 표현이 산재하지만, 집단 무의식의 바다 기저에서 인류는 원형(archetype)이란 큼직한 반죽을 공유한다.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는 이 반죽을 조금씩 떼어 저마다 모양새를 잡고 이름을 발라 갖은 상징과 신화를 굽는다. 그래서 상징을 비롯한 온갖 가치 발현은 원형의 진동이고, 발현들의 무한 중첩이 곧 원형이다. 이를테면 양자역학에서 ‘전자가 원자 주변을 돈다’라는 명제가 원형이라면, 매 순간 서로 다른 위치에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관찰된’ 전자가 바로 우리가 의식하는 개개의 이미지나 가치인 셈이다.
임현정은 그런 원형들이 사는 집단 무의식 나라를 둘러본다. 비록 각자의 내면에 있음에도 자신의 뜻대로 만든 것이 아니며, 그 내용을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도,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도 없는, 제어 불능, 번역 불능의 세상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알 수 없는, 그러나 아예 식별 불가능은 아니라 그저 알 듯 말 듯 한 형상들은, 작가의 마음 속 깊이 팔을 뻗어 불쑥 꺼낸 바, 작가 자신조차 그 하나하나의 내력까지 꿸 수는 없다. 이를테면 <Landscape with Eggs>를 비롯한 여러 작업에서 등장하는 알과 같은 형상들은, 생명을 품은 것일 수도, 비범한 탄생을 의미할 수도, 또 그냥 시장바닥에 파는 달걀 나부랭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이미지를 이미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경험담이 있다. 한창 작업 도중 작가는, 문득 작업실을 탈출해 설악산으로 향했는데 그림 속과 같은 풍경을 실제로 맞닥뜨렸다. 한국에도 이런 풍경이 존재했다니 몹시 신기했다고 한다.
어쩌면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비슷한 풍경을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확실한 점은 작가와 같은 일화 역시 집단 무의식의 창고에 쌓여 하나의 원형을 생산하는 재료가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풍경을 보고 생각의 접점을 공유하며, 같은 것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작가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그래서 의식에 너무 간이 배지 않도록 최대한 날 것의 형상을 끄집어 화폭에 그대로 급속 박제한다

소품 작업도 등장한다. 이들은 무궁한 아기자기함을 과시하며 종횡 파노라마의 장대함과 또 다른 대비를 이룬다. 너른 풍경 이곳저곳 고개를 내밀던 수많은 사물 하나하나가 여기서는 손바닥만 한 화폭 가득 자신 있게 들어찬다. 이 생각 저 생각 돌아가며 공평히 주인공 노릇 한번 해 보는 것이다. 이로써 일상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신기함의 단편들을 놓치지 않고 포획해 모아 놓은 생각 도감 <Painting Curiosities>가 완성된다. 그림 내외로 숨어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어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는 재미는 사실 작가가 기대하는 주된 감상 코드이기도 하다.
비록 그 형식은 보쉬나, 브뤼겔을 비롯한 환상파의 차용에서 출항했을지라도, 형태와 구성은 물론, 작업과 작업이 이어져 이루는 거대한 무의식 세계까지도 이미 임현정만의 독자적인 구축에 돌입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작가소개//

2013 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s and Design 석사, 런던, 영국
201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학사, 서울

  • 개인전
    2016 ‘마음의 섬들’, OCI미술관, 서울
    2015 ‘The Figures by the Sea’, James Freeman Gallery, 런던, 영국
    2013 ‘Hyunjeong Lim:Trip West’, Ben Johnson Studio, 런던, 영국
  • 주요 단체전
    2016 ‘회화극장’ 난지아트쇼,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전시실, 서울
    ‘아트프로젝트 울산 2016’, ICAPU 운영위원회, 울산시 중구 문화의 거리 일대,
    가다갤러리, 울산
    2015 ‘멘토링 2015’, 신세계 갤러리 센텀시티, 부산
    ‘사소한 발견(Kleine Entdeckungen)’, K+nstlerhaus FRISE, 함부르크, 독일
    2014 ‘My Place’, Galerie Speckstrasse, G’ngeviertel, 함부르크, 독일
    ‘The Last Man’, James Freeman Gallery, 런던, 영국
    2013 ‘Contemporary Visions IV’, Beers.Lambert Gallery, 런던, 영국
    ‘Jerwood Drawing Prize 2013’, Jerwood Visual Arts, 런던, 영국
  • 수상
    2015 ‘2016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서울
    2013 젊은 예술가 문화예술 지원사업 ‘Connection Box in Europe’ 선정, 부산문화재단, 부산

– 장소 : 갤러리 연오재
– 일시 : 2016. 9. 9 –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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