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 초월을 향한 꿈
김소라
이번 전시에 출품된 김혜미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담은 풍경화다. 작가는 지난해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만나게 된 다양한 풍경들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의 눈과 마음을 유혹한 것은 물리적인 풍경 그 자체도 아니고 이국적인 풍물도 아닌 것 같다. 작가는 관광지의 화려함이나 지역 고유의 지방색 같은 것들을 애써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소한 일상적 풍경들이다. 작가를 매혹시킨 것은 아마도 그 장소들과 그 순간들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독특한 느낌들이었으리라. 그것은 그 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공기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포착하고자 한 것은 고정된 풍경이라기보다는 거기서 유동하고 있는 어떤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 같다.
이러한 일종의 ‘사건적 풍경’으로서의 기운은 모든 형상들을 ‘깃털’로 변환시키는 방법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사람, 자동차, 건물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 대부분의 형상들이 깃털화 되었다. 단지 표면만 깃털로 덮여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들은 속속들이 깃털로 만들어진 듯하다. 그렇게 하여 사물들은 그것들이 애초에 가졌던 성질과는 상관없이 모두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으로 변한다. 시각적으로 제시된 사물들이 촉각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바로 이 ‘시각적 촉감’이 김혜미의 풍경을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사건으로서의 풍경’으로 만든다.
이러한 방식을 시도하기 시작한 초기의 작품들에서는 주로 완전히 이질적인 촉감이 던져주는 충격을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권총’을 ‘깃털’로 형상화하고 있는 <shock>라는 제목의 작품은 2012년 미국 어학연수기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착안한 작품이다. 권총이 가진 원래의 차갑고 딱딱한 촉감이 깃털이 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과 대조되면서 다양한 사건적 진실들이 진술된다. 깃털로 만들어진 권총은 위험성과 공격성이 제거되고 무기력해지지만 또 다른 의미들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 형질변환은 폭력적 사태에 대한 공포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치유과정, 혹은 평화와 사랑과 같은 것들을 암시한다. 사물을 원래의 촉감과 완전히 다른 촉감으로 변화시키는 이러한 방법은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현재와는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자극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에서도 이러한 ‘시각적 촉감’이 만들어내는 작용과 의미들은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그러한 큰 흐름 속에서 새롭게 엿보이는 미세한 변화는 작가가 물질적 특성이나 상징적 의미의 차원에서 ‘깃털’이라는 소재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니콜라스 광장>, <알함브라 궁전>, <똘레도>, <마드리드> 등등. 작가는 자신이 방문했던 장소의 이름을 무심한 듯 작품제목으로 삼고 있지만, 화면에 포착된 장면들은 그처럼 담담하지 않다. 작가는 장면들을 공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곳에는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모든 것은 깃털이 되어 흩날리고 진동한다. 곧 흩어져 사라져버릴 것 같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안타까움의 대상은 그 장소의 사물들이 아니다. 그곳에 스며들어있을 기억과 추억들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깃털들을 통해 기억은 아름답게 화했지만, 동시에 그 깃털들의 가벼움은 기억을 공중으로 흩어지도록 만든다. 이러한 소멸에 대한 간절한 안타까움은 결국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영원’을 품은 ‘순간’에 대한 희구이다. 연속적이고 양적인 시간개념에서는 불가능한 희망이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순간’을 완전히 충만하고 진실한 어떤 질적 상태로 이해할 때이다. 영원하기 위해서는 충만하고 진실해야한다. 이렇게 순간과 영원은 만난다.
이렇듯 풍경 속 사물들은 기억을 품고 있고, 소멸은 새로운 생성을 잉태하고 있으며, 순간은 영원을 담고 있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들과 사건들이 생겨난다. 김혜미의 ‘깃털들’과 그것들이 야기하는 ‘시각적 촉감’들이 이러한 끊임없고 무규정적인 생성의 과정들을 추동한다. 사실 ‘촉각’이라는 감각의 본질이 그렇다. 시각이 주객분리를 전제하며 사물을 주관에 맞추어 일방적으로 규정한다면, 촉각은 주객의 경계를 흐리는 상호주관적이고 상호매개적인 감각이다. 뤼스 이리가라이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촉각적인 것을 ‘감각적 초월’이라고 부른다. 감각적 초월이란 감각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이 상호 내재해 있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양자가 상호배제하지 않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촉각은 일종의 과정이다. 이리가라이에 따르면 촉각은 “끊임없는 행진”과 “지속적인 생성”이 일어나는 과정이며 이질적인 것이 서로 관계하고 있는 매개공간이다. 김혜미의 작품은 시각과 촉각이라는 두 이질적인 감각을 한 화면에 도입하고 그 양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성적 사건들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감각적 초월’이다. 뿐만 아니라 영원성을 품은 순간을 염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것은 시각적 인식이나 그것에 뿌리를 둔 이성, 그리고 이성적 규범으로 지배된 일상 속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혜미의 작업은 일종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적 초월을 향한 꿈이다.
– 장소 : 미광화랑
– 일시 : 2016. 8. 25 –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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