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서울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마다 ‘예술의 거리’들이 조성되어 있다. 그 ‘예술의 거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갤러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 ‘예술의 거리’에 위치하는 갤러리들은 인사동 갤러리들과 마찬가지로 텅 비워있다. 와이? 왜 사람들은 갤러리를 방문하지 않는 것일까?
혹 사람들은 미술을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자는 ‘미술이 없어도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잖니?’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반인의 의식 속에 ‘미술의 무용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미술의 무용론’이 일반인의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었을까?
그렇다! ‘미술의 무용론’은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 조상의 집안은 온통 미술로 ‘도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미술은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감상미술’로만 국한되지 않고 ‘생활미술’ 혹은 ‘실용미술’로도 기능했다. 이를테면 우리 조상의 집에 도배되었던 미술은 일종의 ‘살림살이’였다고 말이다.
살림살이하는 우리 주부들이 잘 알고 있듯이 당시 집안에는 장벽화와 족자화 그리고 병풍 등의 그림들 이외에 각종 그릇(도자기)에서부터 그림이 새겨진 장과 농 등의 각종 가구 또한 그림이 수놓아진 (이불에서 보자기에 이르는) 각종 자수 작품도 비치되어 있었다. 판소리 <춘향전>에는 춘향이 방의 천장에도 그림이 붙어있다고 했고, 또 어떤 글에는 평안감옥 안에도 황룡도(黃龍圖)가 걸려 있다고 했다.
더구나 선풍기의 선조인 요술 같은 ‘부채’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머시라? 부채가 미술작품이냐고…요? 만약 조선시대 슈퍼스타 정선이 부채에 금강산을 그린 일명 ‘부채-그림’을 미술작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손들어 보시라?
그러나 오늘날 미술은 장구한 미술의 고향이었던 생활세계에서 가출하여 미술세계라는 살림을 차렸다. 말하자면 일상세계 속에서 호흡했던 장구한 우리 미술이 20세기를 접어들면서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수용되어진 서구미술로 인해 점차 일상세계와 단절하기에 이르렀다고 말이다.
따라서 더 이상 미술은 일상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독된 중성적인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박제화 되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간주되었다. 미술은 한 마디로 ‘미술을 위한 미술’이기를 꿈꾸게 되었던 것이다. 허나 미술의 독립을 위해 지불된 대가(代價)는 일상세계와의 ‘이별’이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지 않는 까닭들 중의 하나가 오늘날 미술이 더 이상 일상생활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생활공간을 풍요롭게 했던 미술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힘겹게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따리서 갤러리 양산은 미슬이 일상생활에 얼마나 유용한 작품들인지를 알리는 기획전을 <생활 속의 예술(ART IN LIFE)>이라는 타이틀로 마련했다. 이번 기획전은 전시장을 생활공간으로 연출하여 미술작품들을 전시하는 문자 그대로 ‘생활 속의 예술’전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디자이너, 금람해 백종환 정희라 한주환
기존 전시는 생산자(작품/작가) 중심의 전시였다. 하지만 모든 마케팅은 고객중심주의로 이동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계는 여전히 소비자(관객)보다 생산자(작가/작품) 중심 전시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갤러리 양산의 <생활 속의 예술>은 생산자가 아닌 관객중심의 전시를 위한 연출에 주목하고자 한다. 관객이 갤러리 양산을 방문하면 전시장에 누구나 사용하는 집안의 가구들을 만나게 된다. 거실을 상징하는 소파와 침대, 침실을 상징하는 침대와 화장 테이블(dressing table)이 그것이다.
물론 그 가구들은 미적인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이면서 동시에 기능하는 생활가구(life furniture)이다. 그 아트 퍼니처들은 <생활 속의 미술> 전시 컨셉과 문맥을 이룰 수 있는 4인의 퍼니처 디자이너(금람해, 백종환, 정희라, 한주환)의 작품들이다.
소파는 한주환 디자이너의 <브리지(Bridge)>(2014), 테이블은 정희라 디자이너의 <보2(Bo_02)>(2016), 침대는 금람해 디자이너의 <요(Yo)>(2015), 화장 테이블은 정희라 디자이너의 <보(Bo)>(2014) 그리고 화분 형태의 의자는 백종환 디자이너의 <Pot>(2014)이다. 이들 4인방 디자이너는 한국 디자인계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이다.
금람해는 퍼플레인과 두앤비디자인에서 제품디자이너로 그리고 (주)한샘에서 가구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현재 프리랜서로 제품디자이너 및 가구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간추린 전시 및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K-TEC 마우스디자인공모전금상(2005), Red-dot Design Concept Award 수상(2007), 100% Design Tokyo(2007), 이태리 밀라노의 Designer’s Hand(2008), 한국디자인진흥원Korea Good Design 선정(2009), 중국 New Design Generation(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2011), 이태리 A’Furnitureand HomewareDesign Award 은상(2011).
백종환은 한국실내건축가협회 이사이다. 그는 ㈜월가어소시애이트에서 인테리어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현재 WGNB(wallga&brothers) 소장으로 있다. 그의 간추린 전시 및 수상은 다음과 같다. KOSID (Korea interior design competition _ ‘the first prize'(2004), Seoul Desing Olympiad ‘Sponge chair’ Exhibition(2008), Korea Space Design Award(2009), 일본디자인협회 주최 JCD Design Award(2009), Korea Interior Design Best Award 2010 “名家名人賞“, Red Dot Award 2014 winner.
정희라는 인테리어디자이너 및 가구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현재 한화L&C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한주환은 현재 인테리어디자인스튜디오(Happymaker Design Studio) 대표로 인테리어디자이너와 가구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진행한 주요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사인리뉴얼 시공, 합정동 롯데카드 아트홀 로비 설계, 디 초콜렛 커피 중국 인테리어 디자인매뉴얼 개발, DEETE ESPRESSO 인테리어 디자인 매뉴얼 리뉴얼, LENHE DEPARTMENT STORE CHENGDU CHINA 동선설계 등이다.
갤러리 양산 전시장에 전시된 아트 퍼니처는 심플하면서도 우아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아트 퍼니처는 일상공간에서도 사용가능하다. 따라서 관객은 전시장에 비치된 소파에 앉거나 화장 테이블에서 화장할 수 있으며 침대에 누워도 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아티스트, 김동유 김중만 배준성 하봉호
갤러리 양산의 <생활 속의 예술>은 아트 퍼니처와 문맥을 이룰 수 있는 아티스트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다. 이를테면 여러분의 집안을 품격 있게 느낄 수 있는 작품들 말이다. 한주환 디자이너의 <브리지>, 즉 소파와 매칭(matching)될 수 있는 작품으로 배준성 작가의 일명 ‘뮤지엄의 유령(Phantom of Museum)’을.
그리고 정희라 디자이너의 <Bo_02>, 즉 테이블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작품으로 김중만 작가의 대형사진 ‘싱가포르 다운타운_풍경(scape)’을. 금람해 디자이너의 <Yo>, 즉 침대와 접목시킬 수 있는 작품으로 하봉호 작가의 대형사진 ‘레드시그널 sy#007(red Signal sy#007)’을. 정희라 디자이너의 <Bo>, 즉 화장 테이블과 문맥을 이룰 수 있는 작품으로 김동유 작가의 일명 ‘이중그림’ 시리즈 중에서 ‘그레이스 켈리-클라크 게이블(Grace Kelly-Clark Gable)’을 매칭해 놓았다.
김동유, 김중만, 배준성, 하봉호. 이들은 이미 잘 알려진 스타작가들이다. 김동유 작가와 배준성 작가는 이미 미술계 스타작가들이다. 그들은 미술계에서 이미 적잖은 평가를 거친 작가들이다.
김동유의 ‘이중 얼굴(DUAL FACE)’
김동유(음력 1965년 10월 4일~ )는 대한민국의 화가이다. 세포처럼 작은 이미지들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픽셀 모자이크 회화’를 주로 그린다. 그의 작품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3억2000만원에 낙찰돼 당시 생존 국내 작가로는 해외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2009년 국제 미술 사이트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1945년 이후 출생한 세계 현대미술 작가 중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거래된 작가 100명’ 가운데 55위에 들었는데, 한국 작가로는 유일한 것이다.
위 인용문은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라는 위키백과(Wikipedia)에 서술된 ‘김동유’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김동유는 2006년 경매를 통해 국제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김동유의 대표작인 세포처럼 작은 이미지들로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픽셀 모자이크 회화’는 흔히 ‘이중 그림’으로 불린다. 그런데 그의 ‘이중 그림’은 ‘얼굴 속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이중 얼굴(DUAL FACE)’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김동유의 ‘이중 얼굴’은 거대한 초상화와 수백 개 혹은 천개가 넘는 일종의 명함판 초상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관객은 ‘이중 얼굴’을 보기위해 그림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또 그림 가까이 접근해야만 한다.
그러나 관객은 외람되게도 결코 그 두 개의 얼굴을 ‘동시에’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거대한 얼굴을 보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 작은 얼굴들은 사라지고, 작은 얼굴들을 보기위해 그림 가까이 접근하면 거대한 얼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은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지 못하고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서성인다.
김동유 작가는 이번 갤러리 양산의 개관전 <생활 속의 예술>을 위해 그의 대표작들 중 하 나인 <그레이스 켈리-클라크 게이블>을 전시한다. 김동유는 거대한 켈리를 탄생시키기 위해 일일이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의 작은 게이블‘들’을 그려놓는다. 그들의 이미지는 언론을 통해 이미 ‘단물’이 다 빠진 그것 자체로는 정서적으로 별로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상투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유는 마치 상투적인 이발소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듯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 단물이 다 빠진 상투적인 이미지들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미 단물이 다 빠진 ‘그레이스 켈리’로 부활시키는 것이 다름아닌 클라크 게이블‘들’이 아닌가? 하지만 당신이 마치 깨알같이 보이는 클라크 게이블을 보기위해 그림 앞으로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그레이스 켈리’는 당신의 눈에서 사라져 버린다.
김동유는 그레이스 켈리와 클라크 게이블을 ‘합체’시켜 그 사이에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아니다! 그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주체는 관객의 몫이다. 혹자는 그레이스 켈리와 클라크 게이블의 성별에 주목하며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경계를 교묘하게 해체한 것으로 독해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성적 차이는 단지 이미지로서 존재할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관객은 그레이스 켈리와 클라크 게이블을 동시에 볼 수 없다. 관객이 그레이스 켈리를 보면 클라크 게이블은 존재하지 않고, 관객이 클라크 게이블을 보면 그레이스 켈리는 사라진다. 그들은 ‘합체’되어 있지만, 관객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배준성의 뮤지엄(Museum of Bae Joonsung)
배준성은 일명 ‘화가의 옷’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1999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울사진대전’에 풀품된 배준성의 ‘화가의 옷’은, 당시 그 전시회를 방문한 프랑스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의 사진부장이 구입하여 퐁피두센터에 소장되게 된다. 그 계기로 배준성은 2000년 프랑스 ‘아를 포토페스티발(Arles Photo Festival)’에 초대되어 국제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해 배준성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관광부 주관)을 받는다.
2001년 배준성은 모스크바 뮤지엄에서 개최한 ‘모델 & 모드(Model & Mode)’ 전시회에 초대된다. 그리고 그는 그 다음해인 2002년 모스크바 사진 비엔날레와 보자르미술관에서 개인전 <뚜르에서의 화가의 옷(The Costume of Painter in Tours)>을 개최한다. 그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을 보자르미술관에서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 같은 해 배준성은 바젤 아트페어에 출품한 모든 작품을 솔드 아웃(Sold Out)시킨다.
배준성의 ‘렌티큘러-페인팅’은 2005년 홍콩 크리스티경매와 뉴욕 경매시장에 선보여 추정가보다 2배나 높은 가격에 낙찰됨으로써 다시 한 번 해외미술시장에서 인정을 받는다. 배준성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2006년쯤인가 제 작품을 찾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시기가 있었어요. 2년 동안 작품 500여 개를 팔았다면 믿으시겠어요? ‘마치 컵라면 팔듯이 작품을 팔았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죠.(웃음)”
미술계 ‘장난꾸러기’ 배준성은 은밀한 욕망 폭로하기에 한 발 더 나간다. 일명 ‘렌티큘러(lenticular)’ 작업이 그것이다. 배준성은 이번 갤러리 양산 기획전에 화가의 옷-뮤지엄의 유령>을 출품한다. 그것은 마치 영화 <더 베스트 오퍼>에 등장하는 버질의 비밀 수장고 벽면에 가득 수집된 예술작품들처럼 보인다. 수많은 작품들이 거대한 공간의 벽면들에 전시되어 있다. 그 작품들은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일명 ‘명화’들이다.
그런데 그 명화들을 한 소녀가 바라보고 있다. 그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프랑수아 제라르의 <프쉬케와 아모르>를 만나게 될 것 같다. 그 그림은 비너스의 아들 아모르(큐피트)가 프쉬케에게 첫 번째 키스를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근데 프쉬케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녀는 키스에 몰입하지 않고 두 눈을 뜨고 프쉬케가 아닌 우리(관객)을 보고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인간의 눈에는 신의 아들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그들의 모습을 마치 정지된 순간처럼 움직이지 않는 장면으로 그려놓았다. 흥미롭게도 배준성은 프랑수아 제라르의 그림을 ‘인물화’라기보다 오히려 ‘정물화’로 간주한다. 와이? 왜냐하면 그 그림은 ‘정지된 삶(Still Life)’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배준성은 자신의 그림 안에 그려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포함하여 모든 그림들을 모조리 ‘정물화’로 간주한다. 아니다! 그의 <뮤지엄의 유령>에도 영화 <더 베스트 오퍼>처럼 반전이 있다.
반전? 뮤지엄 가운데 벽면 상단에 다른 그림들에 비해 크게 그려진 정물화가 그것이다. 그 정물화는 작은 인물화 두 점을 배경으로 전경에 꽃과 과일 등이 그려져 있다. 그 그림은 다른 ‘정물화’들과 달리 사전적 의미에서의 ‘정물화’이다. 그렇다! 배준성의 그림 안에 그려진 명화들 중에 그 그림만 유일하게 흔히 말하는 ‘정물화’인 셈이다. 그런데 배준성의 그림 속에 그려진 ‘정물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필자가 그 그림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인물화 두 점을 배경으로 전경에 꽃과 과일 등이 보였다. 그런데 왼쪽으로 가서 보니 배경의 인물화와 과일들이 사라지고 단지 꽃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는 그림 오른쪽으로 가서 보니, 오직 과일들만 보인다.
그렇다! 그 ‘정물화’는 렌티큘러를 활용하여 3개의 이미지 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배준성의 ‘정물화’는 ‘정지된 삶(still life)’도 아니고 ‘죽은 자연(nature morte)’도 아니다! 배준성은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명화’들은 모조리 ‘정지된 삶’이나 ‘죽은 자연’으로 그려놓은 반면, 서양의 명화들과 함께 전시된 자신의 ‘정물화’는 ‘움직이는 삶’이나 ‘살아있는 자연’으로 작업해 놓은 셈이다.
문득 영화 <더 베스트 오퍼> 주인공인 버질의 ‘굴절된 우월의식’이 떠오른다. 그러나 배준성의 ‘굴절된 우월의식’은 서양미술사의 우월의식을 폭로하기위한 것이란 점이다. 배준성은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과 유럽 등지의 미술관을 방문하여 촬영한 명화들을 ‘짜집기’하여 ‘가상의 미술관’, 즉 ‘배준성의 뮤지엄’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배준성은 서구미술계의 굴절된 우월의식으로 편집된 서양미술사의 명화들 사이에 자신의 작품을 ‘삽입’시켜 서구의 명화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도록 연출해 놓는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배준성의 작품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영리한 반전과 놀라움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기묘하게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아하고 서스펜스로 가득한 작품에 빠져들 것 될 것이다. 관객은 반전 이상의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김중만의 미래 사진국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김중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는 카메라로 사진 찍은지 41년차이다. 김중만이 처음으로 사진에 매료된 일화가 있다. 1972년 그는 니스 국립응용미술대학에 들어가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가 미대를 다니던 중 법대 친구가 기숙사의 암실에서 인화를 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당시 그는 5분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입혀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뒤로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77년 김중만은 프랑스 아를(ARLES) 국제사진페스티벌에서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고, 만 23세에 프랑스 ‘오늘의 사진작가 80인’에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었다. 1979년 그는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사진활동을 하지만 두 차례(1985년, 1986년)나 국외로 추방되었다. 2000년부터 그는 상업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영화 포스터와 스타 배우들을 모델로 패션 및 광고 사진을 찍었다. 2006년 그는 ‘상업사진을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그는 청담동 스튜디오 ‘벨벳언더그라운드’를 오픈하여 작업하고 있다.
김중만은 이번 갤러리 양산의 기획전을 위해 ‘싱가포르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 클락키(Clarke Quay) 풍경’을 찍은 대형사진을 출품한다. 이 작품에 대해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사진의 평면성’을 운운하면서 그를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와 맞짱 뜰 수 있는 사진작가”라고 말했다. 물론 김중만은 사진 한 점에 40억 시장을 만든 안드레아스 거스키를 절대로 쉬운 상대가 아니라고 보았다. 하지만 류병학은 그의 ‘싱가포르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 클락키 풍경’을 바로 김중만이 조용한 나라에서 겸손하고 조용히 칼을 갈고 있는 ‘칼의 일부’라고 평가한다. 그 평가의 기준은 다름아닌 ‘사진의 평면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진의 평면성’은 사진이 인화되는 곳이 다름아닌 ‘평평한’ 인화지라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사진은 흔히 ‘현실’을 재현한다고 하지만, 사진의 현실은 평면에 인화된 ‘평평한 이미지’라는 사실이라고 말이다. 이 점을 깨닫고 작업한 작가들이 바로 거스키와 김중만이라고 류병학은 말한다.
김중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쟁점, 그 가운데”라고 말한다. 물론 그는 그것을 “높은 분이나 환경미화원 아저씨나 갑부나 똑같은 언어”로 대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김중만이 컬러링 한 ‘싱가포르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 클락키 풍경’ 사진은 인공물(건물들)과 자연(하늘)을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 보족적인 관계로 보인다. 말하자면 그 작품은 인공과 자연이 만나는 쟁점, 그 가운데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작품은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풍경이라기보다 차라리 ‘김중만의 미래 도시국가’가 아닌가?
카메라의 프로그램에 반항하는 하봉호
류병학 미술평론가는 “국내 사진작가들 중에 김중만과 하봉호를 높게 평가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상업사진으로 시작하여 사진의 메커니즘을 몸으로 습득하여 아트사진을 ‘찍는다’(라기보다 차라리 ‘만든다’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들은 디지털 사진의 특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그 특성을 잘 살린 작가들이다. 따라서 김중만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 하봉호는 제프 월(Jeff Wall)과 맞짱 뜰 수 있는 작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고 말한다.
2012년 평창비엔날레, 2010년 부산비엔날레와 디지페스타(광주비엔날레관), 2009년 아시아 아트 비엔날레(Asia art Biennale, 국립대만미술관), 2009년 프라하비엔날레, 2008년 봄날은 간다(광주시립미술관), 2007년 한국현대미술제(예술의 전당)과 5028(갤러리 이룸 개관 기념 초대전), 2004년 사진의 방향(실크 갤러리), 2002년 한국 미술의 자화상(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994년 한국 현대 사진의 흐름전(예술의 전당), 1988년 사진 새 시좌전(워커힐미술관), 1986년 도시인(Nikon Salon, Tokyo, Japan) 등이다.
하봉호가 굵직한 국제전들에 초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그의 전시회 경력은 필자가 앞에서 나열한 전시회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를테면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인전을 개최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룹전 참여는 평균 1년에 한 번 정도가 전부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다작을 하지 ‘않는다/못한다.’ 그는 1년에 한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작품이나 단 한 작품만 하는 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하봉호를 국제사진계에 맞짱 뜰 수 있는 국내 사진작가로 간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다. 그는 카메라의 시스템을 뒤집는 사진작업을 하는 독특한 사진작가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처럼 카메라의 시스템을 뒤집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카메라의 시스템을 간파해야만 할 것이다.
하봉호는 이번 갤러리 양산의 기획전에 <레드 시그널>을 출품한다. 모 평론가는 하봉호의 <레드 시그널>을 “군중이면서도 제 각각인, 현대인의 외로움을 표출해내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다른 평론가는 그의 작품을 “뉴욕에서 다양한 인종을 상대로 찍은 사진 작품이지만, 빨간 신호를 받고 횡단보도에 멈춰서 있는 사람들의 외로운 시선을 통해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류병학은 자신 속의 여성들이 “‘현대인의 외로움’이나 ‘외로운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그는 그녀들을 “무엇인가에 홀린 듯 사진 밖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진 속 여성들은 각기 다른 패션과 각기 다른 체형 그리고 헤어스타일도 다르다. 그런데 그 10명의 여자들 얼굴들은 한결같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작품은 10명의 여성 얼굴을 꾸미거나 고친 것을 관객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티가 나지 않도록 한 사람의 얼굴로 합성해 놓은 것이다.
하봉호는 10명의 여성들의 시선을 한 곳을 향해 던지도록 하여 관객의 ‘시선(관심)’을 사진 밖으로 던지게 하고자 했다. 그는 10명의 여자들에게 각기 다른 패션을 착용시켜 각기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10명의 여자들 체형과 헤어스타일을 다르게 하여 다른 여자들로 잘못 보게 만들고자 했다. 와이? 그 10명의 여자 얼굴들이 모조리 같다는 것은 은폐시키기 위해서다.
류병학은 하봉호를 “카메라의 시스템을 뒤집는 사진작업을 하는 독특한 사진작가”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는 사진의 피할 수 없는 프로그램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포토샵으로 사진을 합성하고 조작한다. 그는 1980년대 말 처음으로 포토샵을 배워 이제는 일명 ‘포토샵의 달인’으로 불린다. 물론 그는 컴퓨터 그래픽 작업과 디지털 프로세싱 솔루션 구축으로 비주얼 작업에 능통하다. 따라서 그는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찍을 수 없는 사진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카메라의 자동화에 반항한다. 그렇다면 그는 카메라의 자동화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속에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의 프로그램에 저항하는 것이 아닌가?
독립큐레이터 류병학이 꼽은 전도유망한 아티스트, 김남희
갤러리 양산의 기획전에 초대한 작가는 4인이 아니라 5인이다. 나머지 한 명은 김남희라는 젊은 작가이다. 김남희는 경원대(가천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그녀의 작품은 100원 짜리 동전의 크기인 쬐그만 조각이다. 그녀의 쬐그만 조각은 폴리머클레이에 열을 가해 얻어지는 묘한 형태의 작품이다. 이를테면 그 쬐그만 조각들은 작가(Midas)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열로 인해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김남희의 쬐그만 조각은 큐티(cutie)하다. 하지만 그 귀여운 바디에는 반전 매력이 도사리고 있다. 왜냐하면 귀여운 바디는 동시에 섹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녀의 쬐그만 조각은 큐티와 섹시를 오가는 이중매력이 돋보이는 조각이라고 말이다. 깜찍한 ‘외모’와 동시에 섹시한 매력을 자아내는 쬐그만 조각은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털어놓았다.
김남희 쬐그만 조각들은 갤러리 양산의 쇼윈도갤러리에 설치된다. 쇼윈도갤러리에 설치된 김남희의 쬐그만 조각은 관객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 장소 : 갤러리 양산
– 일시 : 2016. 7. 22 –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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