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숲’에서 만난 종이의 기의(記意)
최병식/미술평론가, 경희대 교수
이건희의 최근 작업들은 ‘문자’와 ‘비문자’ ‘언어’의 본질이다.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플로피 디스켓에 초기 한글을 써내려갔고 이후 사이버 공간에서 급속도로 확장되어온 언어의 혼란, SNS 등으로 이어지는 신개념의 언어체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500여개의 정사각형 작업들이 퍼즐처럼 엮여져서 대작을 형성하고 있는 「언어의 거리(the Language of distance)」는 특히 난수표와 같은 가상공간에서의 언어에 대한 의미 해석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각각의 작품제작 방법은 30×30cm의 사각틀을 준비하여 사각틀에 종이죽물을 부어서 음각 캐스팅을 하였다. 한지위에 종이가 들어간 느낌으로 하나씩 작업을 한 것으로 전체 공간을 만들었다.
그 문자들은 컴퓨터 오피스 한글에 들어있는 각종 문자 기호들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대부분의 도형들은 문자와 유사한 형태의 사물이거나 상징적인 기호, 부호적 언어로 이루어진 것들로서 이건희는 이러한 ‘유사언어’들을 통하여 언어의 본질을 유추해가는 작업과 함께 난무하는 언어의 혼란, 상징언어의 확장을 기반으로 한다.
즉, 약속된 기호로서의 시니피앙(signifiant) 즉 기표(記標)가 아닌, 낮설은 기호들을 나열해 봄으로서 다양한 의미로 응축된 상징부호이거나 유사 언어의 수수께끼와 같은 형태에 몰입하는 독특한 성격을 전개한다. ‘난독(亂讀)’즉 혼란스러운 독해이기도 하지만 전혀 새로운, 익명의 문자유사 형상들을 제시함으로서 그녀가 말하려는 의도는 ‘언어의 익명성’ ‘언어의 혼란’이다.
즉 우리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시니피에(signifie) 즉 기의(記意)본질, 그 본질적 가치만이 아닌 다양한 곡해와 오류, 잡다한 탈본질의 여러 현상들을 비유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건희의 문자 작업은「Rebus」 라고 명명된 다른 한 부류의 비문자시리즈에서 지속적인 관점을 표출하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아크릴 물감으로 불과 몇 mm의 극세화된 마이크로 드로잉을 반복한다. ‘글자나 그림조합의 수수께끼(Rebus)’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시리즈는 비문자이다. 글자라기 보다는 미립자의 드로잉으로 이루어지는 드로잉의 연속이다. 형태는 없고 마치 ‘생각의 드로잉’과 같은 유형의 작업들이다.
그의 이 작업들은 무수한 곡선으로 미립자 선들을 이어가면서 필획을 낙서처럼 드로잉하는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몇 년전 부터는 가시광선과 같은 미립자형태의 유희행위를 반복하면서 일부 알파벳 문자들과 배열된다. 그러나「Rebus-2013-1」에서는 모필로 이루어진 서예의 필획감각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유희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이 시리즈는 시기적으로 볼 때「언어의 거리(the Language of distance)」작업 이전부터 시도되었지만 최근까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두번째 ‘문자 코드’로서 이건희의 언어체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복합적 실험과정을 예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실재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보았으며, 세계를 사물들로 보지 않고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다.”라고 말했다. 소쉬르(Saussure, Ferdinand De)는 그의 언어학에서 정신이 진짜고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한다.
이건희의 관류는 굳이 이와같은 언어학자들의 철학적인 사고를 연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형언어로서의 비교 관점은 있다. 즉 잠재의식의 연상, 채 언어화 되지 않은 사유 언어, 비정형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곡선들에서 약속된 문자의 명확한 기의와는 다른 매우 추상적이지만 원시성과 진설성이 숨쉬고 있다.
기표보다는 기의의 조형언어가 가시덤불처럼 덩어리 채 만들어진 ‘사변적 서예’에서 현상이나 형이상학의 마음언어를 조형적으로 구성해가는 작가의 또 다른 언어체계를 만나게 된다.
이건희의 ‘언어의 숲’까지 이어지는 작업과정, 작업기법과 재료는 ‘종이’에서 차별화 된다. 「paper on paper」로 대표되는 그녀의 종이 몰입은 닥지의 물성에 매료되어 2002년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경기도, 충청도 등지의 한지를 다루는 무형문화재들로부터 닥피를 작업실로 가져와 닥죽을 만들고, 조형적 입체화를 연출해가는 일체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종이의 속성, 물성을 통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10여년에 걸친 그녀의 ‘닥종이 사랑’에서는 적어도 특별한 미학체계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토기나 도자기 유형의 시리즈들이 이번 전시에서도 발표되고 있지만 상당부분에서 세련된 종이와의 대화에 무게가 있다. 기하학적인 추상적 직선들 또한 그렇다. 닥피가 섞인 ‘닥나무의 드로잉’이라고나 할까?
종이의 기의(記意)라고나 할까? 종이를 기반으로 이건희가 줄곧 관심을 기울여온 ‘언어의 숲’ 의 표현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집중된 새로운 형식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두가지 언어시리즈 역시 상당부분의 작업들이 종이를 통하여 발표되어졌다. 문자와 종이의 양자는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그러나 ‘종이’의 재료나 물성의 문제는 작가의 성장배경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한국인의 미학’ ‘잠재의식의 표층’ ‘동어반복’ ‘물성’ 등의 익숙한 1980년대의 미술계 키워드가 말해주고 있지만 당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던 작가의 청년기에서 근거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언어 시리즈 역시 부분적으로는 ‘오토마티즘(Automatism)’ 즉 자동기술법으로 부터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물감과 브러시 대신 닥종이를 선택한 이건희의 독특한 작업과정이 미립자의 드로잉과 합류하면서 그야말로 ‘종이의 기의(記意)’를 찾아나서는 새로운 관류와 언어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종이로 부터의 일탈은「Rebus」언어의 숲에서 비롯된다. 본격적으로 사유드로잉에 몰입하였고, 다시 모필감각의 필획(筆劃)을 추가하면서 부터는 미립자와 대형 붓텃치, 두 번에 걸친 비언어의 언어를 구사한다. 슈퍼 리얼리티가 존재하는 미립자의 선들로부터 정형화된 문자의 체계와는 또다른 차원의 내밀한 사유의 덩어리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언어체계에서 비롯된 이건희의 표현과정과 방법론의 시도는 아직 몇 갈래의 유형으로 진행형이다. 이번 전시를 그녀 자신은 ‘문턱’에 비유했다. 오랫동안의 실험을 거쳐 방에서 세상을 향해 막 걸음을 내딛는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이슈에 비하여 세련된 종이의 호흡에서 미학을 발견해왔던 이건희의 작업은 가장 가까운 자연의 물성과 함께 있다. 그 자연의 호흡과 본질을 근간으로 하여 그간 몰입해왔던 언어의 관점을 재정리하는 ‘문턱’ 너머의 새로운 실험을 기대한다.
– 장소 : 갤러리 아리오소
– 일시 : 2016. 2. 18 – 3. 18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abc@busan.com
最近、イ・ゴンヒ芸術家の作品は「文字」と「文字ではない」、つまり「言語」の本質が主題である。もう1990年代の後半からフロッピーディスクにハングルを書き込み始め、その後はハングルはサイバー空間に素早く広げられ始め、それが言語の混乱、SNSなどに繋がり、新しい意味での言語のシステムに関する関心が高まってきた。
イ・ゴンヒ芸術家の「言語の森」は作業過程、作業の技法、材料である「紙」から違う。「ペーパ・オン・ペーパ」で代表される彼女が成り切った紙はダクゾンイというコウゾの樹皮で作られた紙に魅力を感じ、2002年から使っている。韓国のギョンギド・チュンチョンドなどの地域のハンジという韓国の紙を扱っている無形文化財の方からコウゾの樹皮を作業室の持ってきて、その樹皮を粥にし、その粥で造形的に立体化を演出していく作業を始め、紙の属性、物性を通した多様な作業を進めてきた。
それから今までおよそ10年にかけた彼女の「ダクゾンイというコウゾの樹皮の紙への愛」には最初から大した特別な美学に関するものはなかった。そして土器や陶磁器のシリーズは今回の展示でも発表されてはいるが、主に紙との会話が中心である。また、幾何学的な直線も一緒である。「コウゾのドローイング」とも言えるだろう。
紙の言葉とも言えるだろう。紙をもとにしたイ・ゴンヒ芸術家が今まで関心を寄せてきた「言語の森」の表現は最近、何年間、集中してきた新しい形の集まりである。
-場所:ウルサン・ギャラリー・アリオソにて
-日付: 2016. 2. 18 – 3. 18
秋PDのアトリエ / www.artv.kr / ab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