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도예는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용기로부터 출발된다. 평범한 用器들로 인식되는 도예작품은 예로부터 인간 생활의 편리성을 위해 존재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도예가 들에게 주어진 흙이라는 것은 매혹적인 물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항상 재료와 기교에 대한 깊은 존중의 마음을 가지며, 흙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흙과의 교감을 통해 용기나 새로운 창작물 등의 훌륭한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도자예술은 흙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주어진 재료에 창조적 정신과 생각을 넣어 새로운 물질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릇이라는 실체가 가지는 실제적 용도를 부정하지만 그것에 대한 다양한 매혹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특이한 상황이나 현상을 반영하는데 몰입하는 편이고, 무언가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열정과 유혹에 빠져 자아탐닉을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항상 마음 한 곳에는 용기로서의 그릇이 잠재해 있다.
1985년 첫 개인작품 발표 이후 지금까지 항상 用器를 소재로서 등장시켜 왔다. ‘고고학적 오류‘시리즈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도자파편의 노출에서 보여 지는 발굴이미지, 도요지에서의 깨어지거나 찌그러지고 엉켜 붙은 그릇들, 주전자나 의자 등의 사물 형태에 박혀 있거나 노출된 듯이 붙어 있는 그릇, 그것은 용도의 이미지만 있고 사용할 수 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들은 왜곡, 찌그러짐, 뒤틀림, 휘어짐, 깨어짐 등의 변형과 해체 그리고 결합을 통하여 구축되고 있다.
‘침투 또는 노출’ 이라는 주제를 단 이번 작품 역시 그와 같은 범주에서 시작되었다. 용어 자체가 흥미를 주기 때문이다. 침투와 노출은 어떤 물체나 현상, 상황 등이 천천히 은밀하게 잠입 또는 침식으로 숨거나 혹은 드러남의 과정과 결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단어 그 자체가 긴장감을 주며 ‘들어감과 나옴’이라는 정반대의 언어이지만, 정지된 모습에서의 보여 짐은 단어를 바꾸어 사용하더라도 같은 상태로 인식될 수 있다. 작품에서의 시각적 판단은 과거 완료 인지, 현재 완료 또는 현재 진행형인지 상태를 단정 지을 수 없는 시간적 영속성이 희미하게 간파 될 뿐, 상호 애매 모호성이 발생한다. 단지 거기에는 시각적 시간의 흐름만을 정지 상태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지난 2회에 걸쳐 발표한 대형 접시위에 표현된 우주적 관점애서의 ‘별과 신화’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시간의 영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커피 잔과 잔 받침 등이 주된 소재로 찌그러진, 뒤틀린, 휘어진, 깨어진 것들이 모든 작품에서 등장한다. Chess 모양은 침투, 톱밥소성은 탄소 침착에 의한 침투, 주전자는 침투, 방형모양은 노출, 선반모양은 침투, 균열은 침투로 인한 노출 등의 이미지가 인식되어 질 수 있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 상호 교호성을 가진다. 항상 작품 발표 이후 새롭게 뭔가를 추구해야 할 뚜렷한 방향은 없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내 생각이 전개될까?’ 하는 내 자신의 궁금증이 하나의 의문으로 남았었다. 어떤 상황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할 것이 분명 하기에 ‘아무도 없는 눈 내리는 산 너머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신설을 밟는 기분으로 걸어 갈까한다.//작가노트//
– 장소 : 갤러리 시선
– 일시 : 2015. 12. 30 – 2016.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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