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시티에 있는 퍼스트아이콘(1st.iKON)이 조금씩 제 색깔을 찾고 있다. 올 해 초 개관 이후 이동수, 이건희, 김수진, 이탈 등 개성있는 작가들을 초대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상설 갤러리에서 시도하기 힘든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특히 이탈 작가의 설치작품은 미술관에서 볼만한 성격의 전시였다. 작품 판매를 병행해야 하는 사설 갤러리에서 판매와는 별개로 작가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는 좀처럼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 강주리展 역시 퍼스트아이콘 만의 재미있는 기획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 전체가 작가의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동물 드로잉 벽지를 지나 창 쪽으로 가면 벽면에 손으로 전사한 설치작품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 주제는 ‘Twisted Nature’ 인데 동물 그림들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작가를 만나던 날, 강주리 작가는 서울 가는 차를 예약한 상태에서 시간이 촉박한데도 틈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줬다.
인사를 하며 받은 명함에 ‘미술작가 & 교육자’라고 되어 있다. 명함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궁서체에 한국과 미국 전화번호가 있다. 10년 전에 만든 명함인데 대학 졸업하고 미국 가기 전에 아버님이 사용하시던 명함을 참고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에 건너가 보스톤 미술관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서울디지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기도 하다. 작가는 동물 드로잉 벽지와 그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빅토리안 네츄럴리즘의 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며 작품을 그리기 전에 다방면의 자료를 수집한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돌연변이 동물을 그리기 위해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후 작품에 임했다고 한다.
『돌연변이 동물과 식물을 그림으로써 나는 현대 사회 속에서의 “자연”의 의미에 대해 질문해본다. 지금의 사회 속에서 “자연”은 무엇인가?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내 작업 속에서 나타나는 주제들은 이런 정의의 애매모호함을 드러낸다. “과연 현대 사회 속에서 어디까지가 자연인가?” 라는 질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어지러운 내 감정 역시 드러낸다. 현대 과학 기술이 발달 함에 따라 이종교배, 유전공학과 같이 인간이 자연 진화 과정을 조종할 수 있고 변경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인간 진화 과정의 결과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자연은 인간의 발전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작가노트 중에서>
강주리 작가는 환경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자칫 외면하고 싶은 돌연변이 동물과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다시 한 번 환경의 소중함을 되새겨 주고 있다. 볼펜 드로잉으로 재탄생된 동물들을 자세히 보면 빠르게 그려진 선이 아니라 선 하나하나에 정성이 묻어있다. 작가는 대부분 종이에 작업을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잦은 이동에 편리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국 뿐 만 아니라 중국, 포틀랜드 레지던시와 여러 나라로 이동하기 때문에 종이에 그려진 작품을 돌돌 말아서 들고 다닌다고 한다. 설치와 드로잉을 병행하고 있는 작가의 다음 전시가 궁금하다. 이번 전시는 퍼스트아이콘에서 10월 31일까지 이어진다.
– 장소 : 퍼스트아이콘
– 일시 : 2015. 10. 2 –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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