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展(에스플러스갤러리)_20150901

여름의 끝은 대게 뜨거운 햇살로 자주 괴롭혔던 것 같은데, 올 여름은 뭐가 그리 급했던지 가을에게 재빨리 자리를 건네주고 달아난 듯하다. 하늘 빛깔도 며칠 새 달라졌다. 하늘도 구름도 높다. 이런 계절에 해운대 달맞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참 상쾌해진다. 문텐로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언덕의 정상인 와우산 근처에 위치한 에스플러스갤러리를 찾았다.

김은주, 이태호, 조재임 작가의 ‘바람의 흔적’전이 진행 중이다. 갤러리를 들어서니 박효정 큐레이터가 반갑게 맞아준다. 작가들을 대신해서 흔쾌히 인터뷰를 잘 응해주는 박효정 규레이터에게 늘 감사함을 느낀다. 갤러리 입구부터 이태호 작가의 작품이 강한 인상을 풍긴다. 물결을 부각시킨 모노톤의 작품은 움직임의 힘이 느껴진다. 먹 선으로 만들어낸 물결 이미지는 한편의 추상화 같기도 하다.

『분명코 그것은 바다 풍경이다. 아니 결의 드러남이다. 그 결이 파도로 바다로 드러나는 것이다. 먹색으로 뒤덮인 화면은 먹선과 먹색의 집요하게 묘사된 음영들이 만드는 일렁거림의 풍경이다. 그러나 일견되는 것은 통념으로서 풍경이 아니다. 그의 묘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형성되는 리듬이며 생명선의 드러냄이다. 그런 연장에서 보면 묘사는 도리어 풍경의 해체다. 물결이라는 물질이 먹색과 먹선이라는 주름으로 비물질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상이라는 입장에서 추상의 접면을 보아내는 일이다. 그에게서 그리기란 현상의 천착이거나 재현이 아니라 현상 너머, 그 너머로 건너간다는 뜻이다.』<평론가 강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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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김은주 작가의 연필로 그린 작품과 만난다. “얼마 전 김은주 작가 작업실에 갔었습니다. 연필이 손가락 마디만큼 작아질 때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라고 설명하는 박효정 큐레이터의 말을 듣고 다시 작품을 보니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두께감 마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연필이라는 하나의 재료로 집요하게 작업해온 김은주는 늘 화면에 드러나는 이미지 자체를 뛰어넘는 에너지와 삶을 화폭에 노출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흑과 백의 대비가 단조로움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필의 검은색이 빛에 의해 분산되고 반사되면서 작업에 다채로움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종이와 흑연의 마찰이 일으키는 질감을 만들기 위해 반복적으로 연필을 움직였던 정직한 노동력이 이미지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폭의 두께를 생성하기 어려운 연필로 도달한 도상의 깊이와 탄탄한 구도는 가벼운 드로잉 재료로 인식되는 연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평론가 김성연>

조재임 작가는 오랜만에 설치작품을 선 보였다. ‘바람숲’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2011년 롯데갤러리에서 봤던 설치작품과 유사한 작품인데,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얇은 천으로 된 발이 숲의 느낌을 준다. 채색한 한지를 나뭇잎 모양으로 오려 붙이는 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조재임은 2006년 이후 한지로 작업을 해왔다. 한지에 물감을 떨어뜨린 다음 칼로 오려내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저마다 다른 형태와 색을 지닌 나뭇잎들을 일일이 접착제로 붙이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숲을 만든다. 나무가 봄에 싹을 틔우고 시퍼런 한여름을 보내다 이윽고 가을에 빛이 바래는 과정이 그녀의 작품 속에 오롯이 담긴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이 생성해내는 에너지다. 강렬한 생명력으로 자신만의 나이테를 키워가지만 다른 나무의 뿌리를 짓밟는 대신 서로의 다리를 포개어 살아가는 상생의 세계다. 저마다의 빛깔로 눈부시면서도 자신의 색을 강요하지 않는 순수함의 결합이다. 우리가 닮아야 할 자연의 모습이고 되찾아야 할 마음의 무늬다.』<평론가 조정육>

자연물인 바람, 꽃, 물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차분하면서도 섬세하고 힘이 담겨 져 있다. 그러면서 감성적이면서 조화롭다. 박효정 큐레이터의 설명처럼 이 작품들은 영상보다는 실제 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시는 에스플러스갤러리에서 10월 11일까지 이어진다.

– 장소 : 에스플러스갤러리
– 일시 : 2015. 9. 1 –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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