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즈음, 어느 전시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던 사람이 있었다. 필자 역시 사진을 찍던 입장이라 당시 전시장에서 본 다른 사람에 비해 인상이 남았던 것 같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다시 만났는데, 서양화가이며, 고향이 부산이란 것을 알게 됐다. 그 윤지원 작가가 6월 19일부터 혜화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혜화아트센터를 찾는 날 서울은 오랜만에 단비가 흠뻑 내리고 있었다. 대학로는 궂은 날씨에도 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린다. 갤러리에서 윤지원 작가를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왔지만, 가끔 자신도 모르게 사투리가 나온다고 한다. 고향이 부산이라는 공통분모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시장에는 색감이 진하지도 또는 옅지도 않은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작품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봐 왔던 터라 익숙한 이미지들이었다. 작품의 크기가 다양하다. 정면에 가장 큰 작품과 가장 작은 작품을 나란히 배치했다. “작은 작품이 큰 작품에 비해 결코 위축되지 않아요.”라고 자신 있게 설명한다. 작은 작품 속에는 작가가 종종 책을 빌리러 가는 동네 카페를 그려 넣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오후의 풍경. 그 한 장면 속에는 사시사철, 과거와 현재가 첩첩히 쌓여 있어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윤지원 작가는 카메라를 잘 들고 다닌다. 뭔가 작품 소재가 될 것 같으면 파인더를 통해 보고, 셔터를 누른다. 작가의 손을 거쳐 이미지화 된 것들은 붓을 통해 감정이입이 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사색을 하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작품에는 바다가 자주 등장한다. 바다의 색깔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다. 작가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바다는 이미 고향의 바다를 그리고 있었다.
『윤지원의 작업 속에는 시간과 공간, 나와 너, 과거와 현재, 기억과 실체 등과 엮인 ‘관계’가 제시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화면에 연극적인 요소가 부여된 건 스냅사진 같은 기억의 회생 탓이다. 사진으로 찍은 장소는 분명 실존하는 공간이지만 그것이 기억의 회로를 타고 흐르는 순간 익명화되며 물리적 거리는 희석된다. 때문에 관객들은 어딘가 낯설지 않으면서 낯선 상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며, 가까운 듯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도 동일한 연유에 있다. 기억에 머물러 있던 특정한 편린들이 살아 나와 다시 그의 작품 속에서 재해석 되는 셈이다. 이 또한 익명화의 한 과정이요, ‘치유’이다. 오늘날 윤지원은 화려하고 달콤하고 현혹적인 이미지로 포장하는 미적 시도들을 거부한 채, 황량하고 거대한 도시와 그 도시에 묻혀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인간을 자신의 기억과 오버랩 시키며 사회적 본성을 증대하는 회화양식을 흥미롭게 발전시키고 있다. 익명성 속에서 점점 더 고립되고 단절돼 가고 있는 현실, 그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자신의 기억과 연계해 탐구하고, 인간 존재성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내보이고 있다.』<미술평론가 홍경한>
전시 팸플릿 첫장에 ‘램프 옆의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 나오시마 섬으로 가는 배 안 풍경이라고 한다. 램프를 보고 있으면 배 안과 밖의 풍경이 혼돈스럽다. 배의 창과 오버랩 되어 있는 램프를 보고 있으면 마치 배의 바깥쪽에 위치한 램프처럼 보인다. 작품 속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인은 이번 전시에 유일하게 얼굴의 형태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한 여인과 바다와 배, 그리고 위치가 아리송한 램프… 이미 관객들은 작가가 의도한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이어진다.
– 장소 : 혜화아트센터
– 일시 : 2015. 6. 19 –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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