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홍展(갤러리 아인)_20150611

현실과 이상세계를 내왕하는 마음의 비행

신항섭(미술평론가)

직립하는 인간은 두 손을 이용함으로써 눈부신 문명을 이루어냈다. 형태를 만드는 비상한 능력은 모두 손의 몫이다. 하지만 손은 조류의 날개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손으로 못하는 일이 없다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동력으로 비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에게 비상의 능력이 없다는 것은 천만다행인지 모른다. 적어도 하늘을 날다가 추락할 위험은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상승의 욕망을 지닌 인간은 비행기라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를 부러워한다.

어쩌면 모기홍의 종이비행기를 제재로 하는, ‘마음의 자유’라는 명제의 그림은 인간의 상승의 욕망을 구체화한 아름다운 꿈의 비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물론 종이비행기는 자체의 동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기류에 따라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면서 비상을 꿈꾸는 우리의 욕망을 해소시킨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바람에 날리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이비행기는 동력을 지닌 실제의 비행기나 새처럼 마음껏 날 수 없다. 기류를 타지 않으면 자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금세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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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종이비행기는 새처럼 멀리로 날 수 있다. 도시 빌딩 숲을 가로지르는가 하면 높은 산을 향해 날아가기도 한다. 날개를 퍼덕일 수 없는 종이비행기일 뿐이지만 그가 원하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다. 종이비행기는 삼각형 모양의 기하학적인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날렵하다. 삼각형의 꼭지 점을 앞으로 향하면서 날아가는 모습은 새보다도 비행기보다도 더 매끄러운 자태를 보여준다. 그 모양만으로는 바람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을 듯싶다. 절묘하게도 차가운 삼각형 모양의 기하학적인 구조임에도 날렵한 모양새 때문인지 아름답게 보인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종이비행기의 모양은 실물보다도 더 아름답다. 건물이나 산을 배경으로 비행하는 모양은 마치 한 마리의 백조처럼 보인다. 그의 그림 속에 보이는 종이비행기는 실제와 다른 비례를 가지고 있다. 종이비행기의 모양을 갖추었을 뿐 실제와는 다른 비례를 찾아냄으로써 환상적일 만큼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우선 날개가 길다. 몸체보다 날개가 훨씬 큰 학이나 백조와 같은 새의 비례를 따랐기 때문이지 싶다.
학처럼 날개가 큰 종이비행기의 유유자적한 공중유영은 종이비행기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그의 그림 속에서 종이비행기는 언제나 상승의 꿈을 실현한다. 하강이 아니라 상승뿐이다. 날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대신하는 까닭이다. 이렇듯이 상승의 욕망을 실은 종이비행기는 새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날렵하고 멋진 모양새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새보다도 더 실질적인 비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종이비행기의 모양을 선명하게 받쳐주는, 간결하면서도 꿈처럼 아련한 이미지의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도회지의 건물이나 첩첩이 싸이는 산을 배경으로 비상하는 종이비행기는 간결한 배경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균질한 형태의 자잘한 점들이 무수히 겹쳐지면서 만들어내는 중첩된 산의 이미지는 환상적이다. 동일색임에도 불구하고 채도 및 명도의 차이를 통해 중첩되는 산의 거리를 나타냄으로써 심도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배경의 이미지는 정결하고 순정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는 종이비행기를 실제의 모양과 다르게 간결한 이미지로 재해석하였듯이 자연풍경 또한 단순하고도 간결하게 표현한다. 이를 위해 화면을 균질하게 처리한다. 미세한 물감의 입자들이 균질하게 분포하는 질감표현을 보면 구도자의 엄격한 자기수련과 같은 제작과정을 떠올리게 된다. 집중된 의식 및 치밀하고 절제된 표현기법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순화된 정적인 이미지의 질감이 만들어진다.
자연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균질한 질감을 통해 물상 개개의 형태를 드러내지 않고 단지 실루엣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산의 존재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나무를 비롯하여 꽃 풀 바위 따위의 산을 형성하는 물상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단지 산의 형상만이 실루엣처럼 존재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거기에 존재하는 온갖 물상의 형태를 숨긴 채 암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인지 모른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산을 형성하는 물상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데도 전혀 허전하지 않다. 오히려 실루엣으로 처리되는 산의 형상 속에 대자연의 물상을 함축하고 내포시킴으로써 산의 아름다움만이 의미심장하게 부각된다. 더구나 일정한 크기의 무수한 점의 입자들로 구성되는 실루엣 형태의 산은 명상을 유도할 정도이다. 특정의 물상의 형태가 없기에 시선은 한없이 편하게 느낀다. 그러면서 끝 모를 깊이를 지닌 산의 힘에 이끌려 탐미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동적인 이미지로서의 종이비행기에 대응하는 정적인 이미지로서의 풍경은 심미를 자극한다.

그의 종이비행기는 현실을 빙자한 비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욕망의 표출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가 만들어낸 종이비행기는 실제의 공간에서 관념의 공간으로 넘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그가 만들어낸 종이비행기는 현실세계와 형이상학적인 공간을 넘나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의 비행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 장소 : 갤러리 아인
– 일시 : 2015. 6. 11 –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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