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닌 산
김동화(金東華)
다종(多種)한 색채의 변이 그리고 삐죽삐죽 크고 작은 형태소들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녹색조의 화면을 차분히 음미해 본다. 그것들은 나무(木)에서 숲(林, 森)으로 그리고 다시 산(山)으로 나아가면서 점증과 확산의 양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다시 보면 그것은 애초에 빛이었을 뿐, 어떤 지시될 수 있는 형태의 길을 따라간 것은 아니었다. 가다보니 자연히 형상이 된 것일 뿐, 그것은 애초부터 형상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염진욱(廉珍旭)의 산은 애초부터 포름으로서의 산이 아니다. 형태소가 가지는 색가(色價)의 잔잔한 유동을 통해 꿈틀거리는 울림이 빚어지고, 이 울림이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하모니를 흩뿌려낸다. 이 산종(散種)하는, 예기치 않은 번짐의 음향 속에서 회화의 묘미가 고요히 피어오른다. 이 번짐이 때로는 봉우리로 때로는 계곡으로 때로는 구름과 안개로 흐르면서, 풍경으로서의 산이 마치 몽유(夢遊)의 환영처럼 부드럽게 스며든다. 고정된 형상으로서의 산이 색(色)이나 다가옴(近-來)이라면, 이 흐름의 기운으로서 감지되는 산은 공(空)이나 멀어감(遠-去)이다. 결과로서의 산과 과정으로서의 산, 나타남으로서의 산과 사라짐으로서의 산이 서로 공명하는 도상들에서 우리는 종착으로서의 회화가 아닌 여정으로서의 회화를 감응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그림들 속에서 산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산을 그리는 길을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산이 산 자신의 존재를 구현해 나가는 행보와 산이 산 스스로를 인식해 나가는 궤적을 감지할 뿐이다. 거기에는 단지 마음으로서의 산, 암시로서의 산만이 아득히 독존(獨存)하고 있다. 그 여여(如如)한 산에는 진실로 산이라 할 만한 아무런 산이 없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
산, 그것은 산이 아니다.
– 장소 : 미광화랑
– 일시 : 2015. 5. 7 –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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