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 윤경식//
학(學)과 도(道)의 무한한 중첩-김병구 작가, 깨달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죽으라고 공부하란 소리를 듣고 자랐다. 공자 때문이다.
공자는 매일 한가지씩 더해가는 것을 ‘學(학)‘이라고 했다. 지식과 개념과 이론과 경험을 매일 한 가지씩 공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반대로 얘기한다. 도사가 되고 싶으냐? 매일 한 가지씩 비우라고 가르치고 이를 ‘道(도)’라고 한다. 이것을 그림에 비유한다면 ‘學’은 구상이고 ‘道’는 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김병구의 그림은 매일 한 가지씩 시간과 경험을 축척하는 작업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아마도 나이프로 물감을 끝없이 중첩해 나가는 작업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시간의 축적을 통해 삶의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 한다”라고 예기하지만, 시간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으므로 그렇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계는 동사로 되어있다. 움직이는 동사로 되어있는 이 세계를 인간은 그것을 그대로 포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인간이 가진 한계로 인해 인간은 생각이나 관념으로만 세계와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명사로만 생각하고 명사로만 받아들인다. 모든 관념과 개념과 지식은 명사인데 이것은 이 세계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계의 진짜 모습으로 자신을 개입시키기 어렵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사적 관념으로부터 탈출해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깨달음의 단계이다.“
김병구의 작업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사적 행위인데, 결과만 놓고 보면 명사를 쌓아가는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다. 지식이 늘어갈수록 경험이 늘어갈수록 우리는 왜 더 굳어 가는가? 당연히 지식과 경험 이런 것들은 모두 명사이기 때문이다. 죽으라고 명사(물감)만 쌓아대는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내면의 굳어진 지식과 개념과 경험을 끝없이 비워내서 명사로부터 탈출하는 행위가 김병구의 작업이다. 그래서 그는 인드라망 그물의 동사적 율동을 통해 점점 더 자신을 덜 명사로 만들어가기 위해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작업을 한다. 눈으로 보이는 물감이 중첩된 그림과는 반대로 자신을 비워가는 것이다. 지식과 개념으로 고착된 자신을 벗어버리고 저 너머의 피안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윤경식//

//작가 노트//
나는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사물이나 세월의 두께가 쌓인 자연현상에 끌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는데, 모든 것이 생성되고 소멸되며, 변해 간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고 내 소재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나는 자연 순환에 의해 반복되어지는 것이 나의 감정을 무아(無我)시킬 수 있다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다.
나에게 예술은 형식화된 반복을 통해 명상에 도달케 하는 매개체 같은 것이다. 예술은 보여 지는 데로 보는 존재적 태도로 그 내용은 자기 내면의 고유성을 찾는 것이다.
나는 구체적인 형상을 제시하거나 표상의 의지를 추구하는 예술이 결코 자기한테만 있는 고유성을 상실 시킨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모든 자연현상을 바탕으로 통찰해야 하고, 사유를 하나의 형식을 통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 믿는다. 내용이 없는 경지, 형식만 있는 경지는 사람들 마다 다 다르다. 내용이 정해져 있다면 내면의 상상은 한계에 부딪친다. 반복적인 형식은 그 내용이 자기만 있기 때문에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다.
나는 불가항력적인 세월의 두께를 나타내기 위해서 재료를 써야 하는데, 계절의 색상을 나타내는 아크릴물감, 모델링페스트 그리고 자연의 흙을 혼합하여 질료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질료를 나이프로 한 땀, 한 땀 떠서 켜켜이 쌓아가는 과정은 삶의 세세하고 구체적인 일들을 소멸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표현에서 지시 하는 게 없기 때문에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반복된 질료의 중첩으로 시간이 축척되어 갈 수 있겠지만, 사실 그러한 반복적인 형식은 마음을 비우는 무념무상의 상태 즉, 명상적 평온에 도달하기 위한 행위이다.
자연에는 마음이 없다. 우리도 결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면, 존재적 관점으로 대상을 볼 때, 평정심이 유지 될 수 있다. ‘무념무상’의 명상적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속 고유성에 귀를 기우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김병구//
장소 : 갤러리 라함
일시 : 2025. 03. 11 – 04. 1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