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7점의 디지털, 아날로그 혼합 회화
각각 94x127cm 크기로 사람의 이미지와 비구상적 이미지, 패턴이 맞물려 있다.
또한 각각의 작품은 홀로 완결된 것처럼 보이거나 서로 연결되어 맞물려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과 손의 회화를 충돌시키고 다듬으면서 단독의 화면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처음 정원
긴 화면에 처음 낙원에서의 인류, 뱀, 여자의 탄생이 순서 없이 펼쳐진다.
손적 그리기로 전환의 장소로 비현실의, 잃어버린, 회복의 목표인 정원을 선택했다.
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회화를 시뮬레이션한다”거나 “회화를 ‘회화적 판화’로 만든다”라고 한다.
자신이 수집한 이미지와 예전에 작가가 직접 그렸던 그림 이미지의 일부를 컴퓨터에서 조작하고 그것을 캔버스 위에 ‘디지털 페인팅(Digital painting)’하는 것이다.
작가가 회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엔 전통적인 방식의 그림을 그렸지만, 대략 2010년부터는 디지털 방식을 통해 ‘회화의 조건’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현재 10년 넘게 디지털 페인팅을 실험하고 있다.

회화의 조건
‘회화’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선 또는 색채가 평면에 형상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전통적 회화에서는 물감 등을 통해 작가가 평면상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그것은 작가의 직접적인 ‘터치’를 통해 구현된다. 정해민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 방식과는 달리 디지털 방식으로 회화를 흉내 낸다.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전통적 의미에서는 회화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유도하는 방식은 다시 만들어진 회화로써 하나의 회화적 조건을 실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회화를 실험한다. 전시를 통해 보여준 적은 없지만, 프린팅한 이미지 위에 붓질하거나 특정 용재를 사용하여 물리적으로 이미지를 지워내기도 한다. 붓질을 하게 되면 프린팅한 이미지 위에 새로운 두께감을 만들 수 있고 이미지를 지워낸다면 새로운 촉각적 물성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실험은 작가에게 있어 회화의 물성을 탐구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작가는 웹에서 사진을 획득하는데 웹에서 수집한 사진은 대개 저용량이라 이미지가 깨진 상태로 존재한다. 웹에서 떠도는 이미지를 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정해민 작가의 회화에서 눈여겨볼 중요한 요소이다. 작가는 이것을 ‘날 것의 이미지’라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공하는데, 작가는 매끈한 이미지를 다루는 것보다 러프한 상태의 이미지를 직접 조작하면서 물성을 가진 회화적 이미지로 재탄생 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다. 또한, 그는 전통적인 회화가 관객에게 보여질 때 벽에 걸려 전시되는 것과는 달리 설치의 한 형태로서 회화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디지털 방식으로 프린팅된 회화적 이미지를 하나의 오브제로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작가는 이미지가 표현하는 내용과는 별개로 그 평면에 이미지가 구성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어 보여지는 형식적인 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디지털에서의 실재감
작가는 이전에 생성했던 이미지를 소환하여 포토샵에서 변형, 병합 등을 거쳐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물성 없는 이미지로 화면을 채워 나가는 것이다. 작가는 화면을 구축하거나 꾸미다가 허물기를 반복하는데, 이어 다시 구축하는 것으로 순환하다가 (부)적정한 순간에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멈추기도 한다. 작가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변형, 조합하는 명백한 이유를 찾기보다는 이미지를 조작하는 순간 발생하는 감각의 주도적 생기를 쫓는 것에 의미를 둔다. 특히 허상의 주체로서의 이미지는 만들어지며 동시에 허구적 관념에 접합되어 간다. 매체의 가상적 성격 때문에 작가가 실재감을 더 갈망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상의 물감 덩어리를 쭉 늘이거나 짓이기면서 감각하는 어떤 것은 실재의 그것과 겹쳐있으면서도 물성이 없으므로 인하여 다른 어떤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화면 안으로 소환되는 행위들은 그 행위의 지표처럼 묘사되거나 그 자체로써 지표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자동기술법(automatism)
작가에게 이러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생산해 내는 이유를 물을 때 작가는 왜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지 어떠한 원칙에 따라 이미지를 선택, 변형, 조합하는지 답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단지 “언제나 있었던 이미지가 나에게 온다”라고 표현한다. 앞서 작가가 화면을 구성하기 위해 이미지를 축적하다가 직감적으로 어느 순간이 도래하면 그 행위를 멈춘다고 말했던 것에서 힌트를 찾자면, 필자는 이를 ‘무의식의 의식적 발현’이라 표현하고 싶다.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자동기술법과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기록한 행위가 중첩되는 것처럼 말이다.//김주옥 평론글에서//
장소 : 아리안 갤러리
일시 : 2025. 02. 11 – 03. 06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