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정展(낭만시간연구소)_20241026

//작가 노트//
우리는 좋아하던 일이 마음에서 멀어질 때 자연스럽게 초심을 떠올리곤 한다. 나도 그렇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이 전공을 선택했는지 찬찬히 생각해봤다. 내가 한국화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민화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민화의 매력은 처음 느꼈던 그 즐거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

현대 미술에 대한 생각은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현대’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추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종종 이러한 추상성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곤 한다. 작품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이는 현대 미술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현대의 추상성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화는 어떨까? 민화도 추상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현실 세계와는 다른 이미지를 그린 경우가 많고, 실물과 똑같이 묘사된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민화의 추상성은 난해하지 않고 오히려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민화를 보며 느낀 것은 바로 그 건강함이다. 민화는 현실 세계와 공존하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진솔하고, 담백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민화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솔직한 그림이다.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복잡한 해석 없이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가장 정직하게 담아내고, 인간 본연의 소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민화에 매료되었다. 민화는 기교를 통해 복잡하게 표현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하게 그리는 데에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 건강함과 직설성에 끌렸다. 특히 나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잘하지 않기 때문에, 민화에서 느껴지는 직설적인 표현이 저에게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을 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깊은 생각보다는, 그저 보았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민화는 그런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

민화의 주제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까지도 아우른다. 출세, 무병장수, 불로장생, 극락왕생 등 인간이 오랫동안 꿈꾸어 온 소망들이 주제에 담긴다. 나도 그 연장선에서 개인적인 소망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 오래도록 내 곁에 계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민화 속 상징적인 요소들을 통해 이러한 바람을 표현하고자 했다. 불로초, 산호, 연꽃 같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사용해 내 소망을 담아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렸던 장소를 생각하며 그림을 완성했다. 내 그림은 그저 좋은 것들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나만의 민화다.

나의 그림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욕망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때때로 자신의 욕심을 내비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욕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욕심이라면, 그건 긍정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내 그림도 그렇게 욕심껏 소망을 담아 표현한 결과물이다. 건강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민화를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정세정//

장소 : 낭만시간연구소
일시 : 2024. 10. 26 –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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