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원의 작품전에 부치는 글//
1990년대만 해도 미술의 여러 분야는 전공별로 각각 나뉘어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이 조각 활동을 하거나 동양화를 그리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IT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미술의 각 장르들은 그 형식만 남아 있을 뿐이고, ‘크로스오버’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며 모든 예술 분야에서 전공을 운운하는 것은 이미 진부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전신원 작가는 일찍이 일본에 유학하여 가나자와 미술공예대학과 도쿄예술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수학하였고, 건칠기법을 응용한 조형 작품으로 각종 국제 공모전에 출품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이시카와 국제 우루시 공모전에서 은상을 비롯하여 국내외 공모전에서 다수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또한 일민미술관에는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우리나라에서 고대로부터 사용되어 온 옻칠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형된 것으로, 주로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세포나 플랑크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조형된 형상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색상을 구사하며 미니멀 아트를 표방한 작품들이다.
그는 이러한 건칠기법을 바탕으로 미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재료들을 다각적으로 연구하는 가운데 ‘색상의 조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작품 제작에 있어서도 다양한 색상을 중심으로 그의 내면적 세계를 형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물감의 ‘색상의 조화’에 애착을 가져온 그는 많은 시간을 번뇌하다가 드디어 유화를 제작하기 위해 캔버스 앞으로 돌아온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담임 선생의 화실을 방문했을 때 처음 캔버스를 접하며 가졌던 설렘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를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게 한 것이다. “그는 매일 8살 때 담임 선생님 화실에서 처음 캔버스를 대하던 그날과 같은 설렘으로 캔버스와 마주한다”고 했다. 그는 단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공허함을 물을 깃는 자세로 채워 나갈 것이다.
그가 근년 들어 제작한 유화 작품 몇 점을 소개해 보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색상들의 형상은 나뭇잎 같기도 하고 포도 열매, 덜 익은 푸른 바나나, 벼나락 또는 알 수 없는 형상과 선으로 꽉 채워져 있다. 이러한 형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떠한 정서의 멜로디가 흩뿌려지는 가운데, 실내악 연주에서 생성되는 리듬이나 관현악의 웅장한 악기마다 특징적인 음색이 화면 가득히 채워져 있는 것이 작가의 독특한 그림 내용이다. 때로는 오페라 <카르멘>의 소프라노처럼 격정적인 고음에 영혼이 흔들릴 것 같은 정서를 감상자는 필연적으로 느끼게 된다. 때로는 핑크와 골드가 파도처럼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고, 붉은색의 어떤 과일 덩이가 자아내는 장엄한 리듬감이 존재하는 화면도 있다. 이러한 화면의 효과들은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음악 연주를 들으며 작업을 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신원의 그림은 한 곡의 관현악이나 실내악 또는 바이올린 독주가 모티브가 되어 감상자의 심금을 울린다. 정작 미학적 요소들이 공간에 떠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고정되지 않는 어떤 분위기가 관현악처럼, 실내악처럼 끊임없이 들려오는 선율의 그림이라 할 수 있으리라…//예술학박사 권상인//
장소 : 산목&휘 갤러리
일시 : 2024. 10. 26 – 10. 31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