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展(RAC)_20241001

//전시 소개//
RAC 알앤씨에서는 오는 10월 1일부터 11월 3일까지 이기성 작가(b.1959)의 개인전 ’The Abyss‘展을 개최한다. 쇳가루를 활용해 인간의 내면을 사유하며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이기성 작가는 재료의 물성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2019년 ‘겁(刧, Kalpa)’ 시리즈를 발표한 이후 많은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작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오페라 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기성 작가는 미디엄과 쇳가루를 섞어 안료를 만들고 캔버스 위에 펴 바른 뒤 붓이나 손, 도구를 이용하여 밀거나 문질러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녹슨 쇳가루는 서서히 산화가 진행되며 얼룩이 은은하게 번져 나간다. 얼룩이 캔버스에 스며들면 고착액을 부어 산소를 완전히 차단시키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 작업하고 있다.
이번 전시 ‘The Abyss’에서도 2019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Kalpa(겁)’ 시리즈 20여점을 선보인다. ‘겁(刧, Kalpa)’은 산스크리트어로 시간의 단위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뜻하는 개념이다. 작가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함축하는 쇳가루의 물성을 통해 ‘영겁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결국 무(無)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 과정을 말하고 있다.//알앤씨//

//평론, 이진명(미술비평, 철학박사)//
이기성(李基誠)은 미디엄과 쇳가루(鐵粉)를 섞어 안료를 만들고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기성 작가의 회화세계에서 우리는 두 가지 국면을 동시에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는 구성적 세계, 물질적 측면으로서의 미학적 경계이다. 또 하나는 정신적 세계, 세계에 대한 작가의 관점으로서의 철학적 경계이다.

미학적 경계는 보통 네 단계를 거쳐서 완성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따라 서사를 완성하듯이, 화가는 자(疵)․온(穩)․순(醇)․화(化)의 단계를 거치면서 화력(畵歷)을 완성한다. 자(疵)는 하자가 있다는 뜻이다. 잡박한 단계이다. 대부분의 작가가 여기서 끝난다. 온(穩)은 곡식을 걷어 모은다는 뜻이며, 곡식이 모였기 때문에 평화롭다는뜻이다. 작가가선대의여러그림과역사를정복하고임모(臨模)하여어지간한작풍을이룬단계를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는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더 높은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순(醇)이다. 순(醇)은 곡식을 누룩에 발효하고 증류하여 얻은 진한 술을 가리킨다. 물이나 여타 액체를 섞지 않은 정종(正宗)의 술을 가리킨다. 자기만의 풍격을 이룬 단계를 순(醇)이라고 한다. 글씨나 그림이 자유(自由)를 얻은 것을 말한다. 즉, 독창적 오리지널리티의 소유 여부를 말한다. 이 단계의 작가는 동시대에서 세계적으로 통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극히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세계에 통용될 수 있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아직 궁극적인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아직 장인’匠, technician’이라는 범주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장인의 범주에서 해방되려면 예술가가 어떠한 사상을 품고 있어야만 한다. 더구나 그 사상이 자기가 살아 숨 쉬는 시대와 사람들을 위한 애착과 진리를 담아야 한다. 그것이 화(化)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작가는 세계에 통용되는 수준을 넘어서 역사에 남게 된다.

이기성 작가는 순에서 화의 경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기성 작가의 형식은 주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면이, 마치 건축처럼, 탄탄한 구조를 이루는 형식이 있다. 둘째, 캔버스 화면 안에 일부분에 중심을 잡고 붓으로 필획을 옹골지게 응축시키는 형식이 있다. 셋째, 서예의 필획이 중첩되어 펼쳐지며 확산되는 형식이 있다. 넷째, 필선이 방사형으로 뻗치어 산란하는 구조의 형식이 있다. 그런데 이기성 작가의 작품은 어떤 형식을 취하더라도 우리의 존재를 그린 것이다.

사람은 죽음을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우주가 먼지에서 출발하여 먼지로 사라지는 운명을 겪는다는 사실도 추론해낸 존재이다. 모든 사사물물은 인과에 갇혀 있으며, 낳고 성장하다 쇠멸한다는 사실도 아는 존재이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원한 것도 없다. 그러나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하나밖에 없다. 우리는 열역학 제2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에 대하여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우연히 태어난다. 우연히 정보적인 질서’informative’를 얻는데,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란의 순간’abundant’으로 흩어지고 만다. 열역학 제2법칙은 이것을 열사(熱死, heat death), 즉 열죽음이라고 말한다. 불교의 고승들은 이 사실을 아주 오래전부터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이를 통상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의 근본적인 모습을 개념으로 나타낸 말이다. 곧, 생겨나’生’ 머물다’住’ 변해서’異’ 소멸’滅’한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맙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처럼 물리적 공간의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미셸 푸코의 에피스테메라는 말이 있듯이, 시대마다 세계를 보는 관점은 바뀝니다. 강남의 도덕이 북방 초원에 갔을 때 그것은 속박이 되며, 유목민의 도덕이 강남에 왔을 때 그것은 야만이 됩니다. 나의 그림은 모든 것이 변화하여 상쇄한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겪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이기성, ’작가와의 대화‘, 2023년 2월

모든 것은 일정하지 않으며 사람의 가치는 임의적이고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기성 작가가 니힐리스트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만든 가치는 임의적이고 상대적이며, 모든 것이 변하여 소멸하는 허무의 운명을 타고났으며,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여(인식하여) 절대고독에 휩싸이더라도 하나의 모험을 펼친다는 것이다. 사람은 죽음을 잊기 위해서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문화는 절대고독을 가려주는 장막, 즉 커튼이다. 그 장막조차도 언젠가 사라진다. 이기성 작가는 쇳가루로 구성된 화면을 부식시킨다. 부식은 죽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기성 작가의 화면 속에서 진리를 맞이하게 된다. 작가가 그려내는 그 죽음의 메타포는 모든 것을 외롭고 허무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두렵고 가공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매 순간을 귀중하며 아름답고 절실하게 누려야 하는 진실이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진실을 누릴 수 있는가?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저는 산스크리트어 중에 칼파(kalpa)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겁파(劫波)라고도 말한다고 합니다. 세계가 생기고 진행되다가 파괴되어 무(無)가 되고 마는 주기를 말합니다. 측정할 수 없는 시간으로 영겁의 시간처럼 길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람은 시간과 공간만을 인식합니다. 4차원은 겁파에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내면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면은 4차원을 넘어 차원을 초월합니다. 따라서 무(無)도 없고 공(空)도 없습니다. (이기성 작가와의 대화, 2023년 2월)

작가는 외구(外求)와 지본(知本)의 개념을 상정한다. 외구는 우리가 사물이나 물질, 곧 나의 앞에 있는 대상을 희구하는 것을 말한다. 지본은 이와 반대로 근본을 아는 것을 말한다. 근본은 바로 우리의 내면에 존재한다. 외부 세계가 현란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도 무궁무진하다. 외부 세계는 변하여 없어지지만 우리의 내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면의 무궁한 진리를 즐겨서 낙천지명(樂天知命)의 도리에 다가서면 그만인 것일까? 도리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와 사람과 함께 여민동락(與民同樂)해야 한다. 즉,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어야 한다. 이기성 작가에 의하면 문화가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기성 작가의 부식된 화면은 겁파(劫波)의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표현한다. 동시에 쇳가루의 가루 한 알 한 알은 역사를 살아갔던 모든 사물과 사람, 그리고 사건을 상징한다. 화면의 형식, 이를테면 붓질과 구성, 형식은 인간사와 자연사의 착종(錯綜)을 상징한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천재 왕국유(王國維, 1877-1927)는 다음과 같이 읊는다.
대가의 작품은 감정을 말함에 반드시 사람의 심장과 비장에 모두 스미며, 그것이 경치를 묘사함에 반드시 눈과 귀를 활연히 열어준다. 그의 말이 입에서 나오면 꾸미는 바가 없다. 언제나 진리를 보여주며 그것을 아는 자를 더욱 깊게 해준다. 시와 문장이 모두 그러하니, 이를 가지고 옛날과 지금 작품을 형량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기성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미적 모험이 아니다. 무언가 꾸밈이 전혀 없고 오로지 우리의 내면과 인간의 역사를 사유하여 화폭에 담아낸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림을 통해서 사유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그림을 아는 사람에게는 더욱 높은 상향의지를 보여준다. 상향의지야말로 진정한 사랑(eros)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과 함께 아름다움과 진리를 나누어 누리려는 마음이다.

장소 : 알앤씨
일시 : 2024. 10. 01 –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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