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제 작업의 제목은 방 안의 코끼리입니다. 이 작은 책자는 방 안의 코끼리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책입니다. 다들 방 안에 코끼리 한 마리씩은 키우시죠? 장난입니다. 우리 다들 너무 아픈 기억들은 하나씩 있죠.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로 인해 아주 깊은, 마주하고 싶지도 않고,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기억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을 보지 않으려고 방 안에 가두고 문을 잠그죠.
우리 상상을 한 번 해볼까요? 어떤 방문을 하나 열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그냥 문을 열었죠. 그랬더니 그 방 안에 엄청나게 큰 코끼리 한 마리가 있는 겁니다. 어떡하지? 어떻게 내보내지? 당장 뛰쳐나가서 모두에게 말한다고 한들 믿어는 주려나? 도움을 청할까? 나는 지금 당장 여기서 어떻게 도망치지?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고 다리가 움직이질 않겠죠. 저의 작업에서는 이런 커다란 코끼리가 아주 마음 아픈, 스치기도 싫을 만큼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징합니다. 이런 아픈 기억들은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행복하고 싶은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 해결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의 순간으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마주하지 않고 숨겨두고 덮어둔 기억 때문입니다.
사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정말 많은 다짐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의 이야기를 하기 전 제 마음 안에 있는 너무도 낯설고 제멋대로에 울보에 힘들어하는 어린아이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린아이는 정말 잘 숨어 있습니다. 의식하고 있을 때는 잘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 어린아이의 아픈 기억을 찾기 위해선 더 솔직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몸의 기억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한 저의 몸과 기억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아주 작은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저의 아픈 트라우마, 기억을 마주보기 위해 들어갔지만 마주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저의 맨살을 보고, 이 안에 존재하는 성적인 트라우마가 코끼리만큼이나 크게 무섭게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코끼리처럼 큰 기억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호막을 꺼냈습니다. 스타킹입니다. 맨살을 덮고 저의 보호막을 만들었습니다.
제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 작은방에서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주 작고 강렬한 물건과 상황들이죠. 우리는 작은 조각만으로도 전체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아픈 기억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조금의 물방울만으로도 금방 물에 빠졌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구불구불한 인체를 보며 코끼리의 모양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작은 수챗구멍 하나 만으로도 화장실의 욕조를 떠올릴 수 있고, 손잡이가 없는 문을 보며 볼 일 볼 땐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픈 트라우마의 기억이란 그런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화장실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이게 왜 화장실에 있는 것인지, 불편하고 낯선 물건들도 등장을 합니다. 조금의 낯섦은 익숙함을 불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화장실 안에 있는 음식과 같은 것이죠. 저는 이런 아픈 기억을 담은 저의 작업이 어둡기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밝아 보이기도, 예뻐 보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하면서도 저의 기억 안에 있던 상처들을 쉽게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꺼내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도 한 번에 마주할 힘까지 생기진 않았던 것이죠. 저는 이제야 조금씩 저의 사진을 보며 그랬구나. 나의 마음이 힘들었겠구나. 나는 그때 나를 안아주지 못하고 위로해 주지 못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아픈 기억을 어두운 기억을 우리는 너무 미워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이 기억을 혼내고, 가두고, 겁을 준다면 또 도망가기만 할 것입니다. 아프고 쓰라린 삶의 그림자 같은 기억이지만 빛으로 비췄을 때 그림자가 생깁니다. 이 작업 속 사진의 밝은 빛들은 어두운, 아픈 기억을 비춘 빛입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만들어낸 이 작업이 조금이나마 힘들고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너는 멋있어, 너는 빨리 일어날 수 있어, 이런 위로보다는 너와 내가, 우리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 네가 너무나도 힘든 감정을 느끼는 지금, 나도 너처럼 그 감정을 같이 느끼고 있어. 그러니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저의 작업이 우리의 코끼리가, 갇힌 방 안에서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권수인//
장소 : 아트 스페이스 이신
일시 : 2024. 09. 01– 09. 15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