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의 시대//
인류와 더불어 시작된 공예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가 삶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괴물의 출현에 온갖 적개심을 드러냈지만, 20c에 들어서며 상황은 극적으로 전환되는데 그 중심에 독일공작연맹과 바우하우스가 있다.
1871년에야 비로소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춘 독일은 산업혁명 후발주자임에도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이미 공고해진 제국주의 앞에서 멈춰서야 했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 불사 의지가 불타오르던 그때 등장한 것이 독일공작연맹이다. 대가가 너무 큰 전쟁을 일으키기보다 상품으로 세계를 장악하겠다는 야무진 꿈이었다. 그들은 치밀한 조사 끝에 열강들이 적대시했던 기계를 인간의 도구로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높은 수준의 공예품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표준화를 통한 대량생산을 주장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반대로 창립자가 물러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은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근본적인 변화는 패전 후에 본격화되었다. 상품을 만들어 팔기 전에 교육과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욕망을 생산하려는 마케팅을 주도한 것이 바우하우스였다.
백 년이 지난 후, 공예에 의한 혁명을 꿈꾸었던 세상은 상상보다 더 현실이 되었다. 기계 도입, 표준화와 대량생산은 당연한 생활양식이 되었고, 그들의 디자인은 공예품뿐 아니라 핸드폰 같은 제품을 넘어 도시와 건축을 바꾸며 지금의 세계를 만들었다. 세계 최고 부자 반열엔 이제 명품이라 불리는 공예품 제국의 회장이 자리하니 가히 공예의 시대가 구현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데자뷰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기계가 있던 자리에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논쟁을 주도할 뿐이다. 이번에도 역시 AI와 사람의 대결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싸움이라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누군가가 설정해놓은 도구/기계, 수공예/디자인, 실용성/예술성, 인공지능/인간 같은 대결의 프레임이 아니다. 이런 소모적 논쟁 이면에 은폐된 것은 여전히 권력과 자본의 패권경쟁이다. 백 년 전 장밋빛 약속이 만들어 놓은 우리 시대의 민낯은 삶의 다양성과 개성을 표준화시키고, 브랜드별 등급으로 서열화시켜 끊임없이 욕망을 생산하고 가스라이팅으로 묻지마 소비를 조장하는 너무도 단단한 시스템으로 무장된 세상이다. 저항이나 비평, 토론 역시 이 정교한 장치 일부로만 작동할 뿐이다.
이런 세상한가운데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가 ‘공예가’라는 이름으로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해성사나 숨겨놓은 연애편지를 들려주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궁금한 것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조금 더 세련된 손놀림이 아니다. 기술은 사람을 감탄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감동을 주는 것은 구체적인 삶과 꿈이 담긴 작품이 들려주는 공예의 서사다. 그걸 만지고 느끼면서 어딘가 내장된 설렘과 그리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아득한 기억이 소환되어 고맙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강요하고 주입하지도, 표준화되지도 않은 다양한 우리의 이야기-그런 서사가 가득한 또 다른 공예의 시대를 꿈꾸어 본다.//김승남//
장소 : 한새 갤러리
일시 : 2024. 07. 24 – 08. 06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