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展(갤러리 한스)_20240706

//언론 보도//
12년 전, 이정윤 작가의 작품을 처음 봤다. 빨간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 조형물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커다란 풍선같은 코끼리들은 한결같이 눈물을 흘리거나 지친 기색이었다. 뽀족한 하이힐에 발을 구겨 놓고 지탱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인간과 비슷하게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코끼리는 이정윤 작가의 작품에선 결국 인간을 뜻한다. 작가의 시그니처로 불리는 ‘하이힐 신은 코끼리’는 힘들고 지친 현대인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정윤의 하이힐 신은 코끼리들은 전국 갤러리를 비롯해 미술 전시장이 아닌 다양한 공간에서까지 선보이며 많은 이들을 위로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표현했던 이 작가가 오랜만에 고향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작가의 시그니처로 불리는 하이힐 신은 코끼리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이 걸렸다.

“절친한 후배 작가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큰 충격을 받았죠. 내색하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작업과 강의를 이어갔는데 결국 제가 2년만에 쓰러졌어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군요. 심각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죠. 그러던 차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사회 전체적으로 퍼지던 불안과 우울을 목격했습니다. 떠난 이들과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현생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코로나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은 떠난 이들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불안과 분노, 우울함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거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사회의 현상을 보며 이정윤 작가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우울과 불안을 벗어나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 부산 기장군 일광읍 갤러리 한스에서 8월 3일까지 열리는 전시 ‘사라지는 노래, 살아지는 노래(song for leaving and living)’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작가는 색이 있는 판유리에 말라버린 식물을 올리고 유리 가루를 유리판 위에 뿌린다. 그리고 가마에 넣고 굽고 성형한다. 퓨징이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유리와 다른 재료가 함께 녹아 새로운 형태가 탄생하게 된다. 이 작업은 유리 장인들조차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다. 섬세하고 약한 유리는 성형 과정에서 대부분 깨지거나 실금이 생긴다. 완벽한 작품이 나오기란 정말 힘들다. 그럼에도 이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고,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마침내 작가가 생각한 유리 회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식물과 유리를 하나로 만드는 과정은 죽음, 소멸, 사라짐에 대한 의식이며 정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리 위에 식물을 놓거나 2장의 유리 사이에 놓인 식물이 재처럼 붙어 흔적이 남습니다. 유리와 합체해 새로운 미학을 탄생시키는데, 의도하지 않은 효과로 인해 아름답기도 하고 인상적인 이미지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색상의 유리 패널을 만날 수 있다. 식물의 모호한 흔적이 더해진 유리 패널은 오묘한 색상을 지닌 채 삶과 죽음이 섞인 이미지가 되었다. 식물 흔적은 회화에서 붓이 표현할 수 없는 질감(마티에르)을 만들었고, 이 작가의 유리 회화는 추상 회화처럼 느껴진다. 엄청난 노력 끝에 자신만의 유리 추상 회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힘든 상황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구축하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정윤 작가의 이번 전시는 우리가 힘들지만 삶을 버티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이든 일이든 그 어떤 대상도 잘 떠나보내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전시의 제목인 ‘사라지는 노래, 살아지는 노래(song for leaving and living)’는 삶에 대한 애정이 담긴 외침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유리 회화 외에도 코드 그린 시리즈 작품, 입으로 불어 만든 색다른 모양의 유리 공예품도 있다. 더운 여름, 유리 공예가 주는 시원함도 또 다른 매력이다.//부산일보 2024.07.28.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장소 : 갤러리 한스
일시 : 2024. 07. 06 –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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