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몇 년 전 ‘몸’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작업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몸’ 작업 시리즈Ⅰ에서는 외부에 노출되어있는 유기물로서의 우리 몸이 밖의 자극에 공격과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몸’/vulnerable이란 전시를 가졌었다.
시리즈 Ⅱ‘CORPUS’/말뭉치에서는 지극히 사적인 내 몸에 허용된 행동 양식이나 존재 양식에 제약을 가하는 힘들에 의해 ‘몸’이 문화가 새겨진 집적물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전시를 가졌다.
시리즈 Ⅲ ‘Threshold’/문턱에 선 몸들에서는 천장에 매달리고 바닥에 쭈그리고 있을 시각적으로 선명히 여성의 몸에 대한 ‘관습적 해석’을 넘어 또는 사회 속에서 훈련되고 규율된 시선을 거둬들이고 전시장 내의 몸을 바라볼 수 있을까? 이성으로 훈련되고,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바라보는 즉 이성과 훈련된 감각을 거두고 ‘몸과 세계 사이의 직접적 무매개적 만남’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 모두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면서 어떤 객관화된 사물에 대해 판단하지 않나? 그런데 과연 우리의 감각을 믿을 수 있을까? 감각하는 몸은 어떤 몸일까? 이 물음이 확장되어 그동안 설치 작업으로만 해 왔던 ‘몸’ 시리즈를 회화, 판화, 사진으로 영역을 확장해 봤다. 이번 전시 ‘감각하는 몸’ 역시 앞선 전시들과 같은 주제의 연장선에 있다.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면, ‘감각하는 몸’은 다양한 감각 체험을 통해서 세상과 연결되며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몸을 의미한다. 즉 ‘감각하는 몸’은 감각을 통해 세상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새로운 경험과 인식을 얻어나가는 ‘되기’(becoming)의 과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어떤 대상의 존재와 상태를 파악하며 이를 통한 상호작용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이는 자신과 외부세계와의 접촉인 셈이다. 즉 감각을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채 개입되는 사회적 무의식에 감각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듯 ‘감각하는 몸’은 세계를 고정불변의 원칙이나 법칙을 통해 파악하지 않고 욕망이 이끄는 방향으로 힘을 실으면서 문턱을 넘는 몸들이다. 문턱은 “실제로 이미 거기 있지만 한계 밖에 있는 것인데, 한계는 문턱과 일정한 간격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전시장 안의 작품들은 ‘감각하는 몸’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작품은 훈련된 감각이나 사회적 무의식의 개입을 의식한 채 감각을 통해 세상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품들 사이에서는 시간과, 공간, 실체와 비실체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며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식을 제공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경험하고 ‘감각하는 몸’의 세계에 함께 빠져 보길 바란다.
애초에 ‘몸이란 무엇인지?’, ‘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 여러 가지 질문으로 시작된 작업이었고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본질에 대해 탐구하면 할수록 몸은 경험을 통해 의식이나 이성으로 쉽게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선명하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오로지 ‘몸’으로만 또 오로지 ‘정신’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한 ‘몸’에 대한 질문들과 사유는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김치가 되어 누워있을 때면 정신은 몸을 아껴쓰라며 속삭인다. 그러다 어느 날 아슬아슬하게 부여잡고 있던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면 육체는 눕기를 거부한다. 이 얼마나 재미난 협력자들인가? 삶이 진행되는 동안 언제 한 번만이라도 이 둘이 서로 조력자가 되어 기쁨의 악수를 나누었으면 한다.//로사 리//
장소 : 갤러리 희
일시 : 2024. 05. 11 – 07. 07.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