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저울은 죽지 않는다.
저울이 살아있다. 얼마 전 1930년대 생산된 저울을 샀는데 90살이 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게 작동이 잘 된다. 하지만 그것에 작동 여부와는 상관없이 쓰이지 않으며, 쓸모를 잃은 사물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은 사물만이 그러한가. 나는 사물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을 보았다. 세상은 내가 체감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있음에도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
사물을 살리고 싶다. 사물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쓰임새부터 잊어버려야 한다. 조각가가 돌 속에 갇혀있는 형상을 꺼내 듯 나는 용도에 가둬진 사물에서 형상을 찾는다. 사물 그 자체의 형상에 집중하면 전혀 관련 없는 것들과의 연결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연결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가령 타버린 성냥이 부츠를 신은 다리가 되어서 걸어 다닐 수 있다. 결합되고 진화하면서 나의 사물들은 생명체들을 흉내 내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사물에서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의 움직임을 그릴 수 있다. 그것은 어릴 때 익혔지만 잊힌 감각이다. 어린아이는 장난감이 자신처럼 살아있다고 믿는 물활론적 사고를 하고, 옛날 사람들은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에 와서 인공지능과 만나 사람이 아닌 것과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아서 C.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나의 마법도 실현 가능해질 수 있는 시대에 오고 있다. 그래서 나의 정물화는 죽음보다는 삶에 더 초점을 둔다. 그림 속 저울은 무게를 달기 위함이 아니며, 표정을 가진 어떤 존재로서 살아가고 죽지 않는다.//조정은//
장소 : 갤러리 H
일시 : 2024. 04. 09 – 04. 26.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