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
창의성은 미친 자들의 광기에서 온다. 기존 가치관에 대한 전복이다. 창의성은 테크닉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관의 변화, 가치관의 전복이다. 버리고 버릴 때 예술가의 창의성은 살아날 수 있다. 창조와 창의는 없는 것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성을 발견하는 데 있다. 다양한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버리고 다시 받아들이고 하는 것들의 연속이다.
예술가에게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의 주제가 때로는 사회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거나,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 사회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어떤 작품은 반사회적인 충격을 안겨 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사회가 그동안 옳다고 믿어왔던 사실들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가에 대한 반사회적인 낙인이다. 작가의 숙명이다.
태초에 자리 잡고 변치 않는 형상의 본질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나의 숙제다. 그렇다고 나의 체험을 벗어난, 남의 지식으로 설익은 길을 떠나긴 싫다. 가슴이 응하는 정도까지다. 낯선 곳에서의 허둥지둥은 싫다. 눈 여겨 보는 이 많지 않아도 늘 가까이 있고 늘 다니고 늘 생각하고, 기거하는 울진이라는 시골을 소재로 작업을 한다. 이곳 울진은 고향이기도 하지만, 원시의 아름다움이 나의 눈을 현혹하는 곳이다. 자연스러움과 생명성을 잉태한 곳이다. 산과 바다와 강이 함께하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바다는 거침이 없고 산은 인자하다. 거침 속에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생명성과 태초의 순수함이 있고, 인자함 속에 힘찬 기백이 있다.
늘 똑같은 아침, 골목길, 항구, 등대, 파도, 소나무 등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곳 울진의 일상이 나의 눈과 작업을 통해, 새롭고 특별한 형상으로 인구에 회자된다면 이것은 예술가로서 나의 존재 이유다. 가장 국지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나의 작업에 나타나는 거칠고 빠른 필선, 단순성 그리고 원색의 터치가 어쩌면 시원의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원형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복종만 할 수 있을 뿐 반항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는 노예다. 반항만 할 수 있을 뿐 복종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그는 반역자다. 그는 분노, 실망, 회한에서 행동하는 것이지 신념이나 원칙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의 글이다.
바다는 거칠다. 동해를 머리맡에 두고 사는 나는 파도의 울음소리에 잠을 깬다.
항상 깨어있으라는 일갈로 들린다.//홍경표//
장소 : 리빈 갤러리
일시 : 2024. 03. 06 – 03. 30.
추PD의 아틀리에 / www.artv.kr / charmbi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