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환展(갤러리 이듬)_20231201

//작가 노트//
저는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 또는 개인과 집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왔습니다. 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얼굴은 없고 조각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몸통에 팔과 다리만 있는 인물은 집단 속의 작은 개인, 즉 특별한 주인공이라 할 수 없는 평범한 개인을 의미합니다. 초기 작품에서는 인물의 생각이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얼굴 및 생각의 진입로인 눈과 귀를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고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지지 못한, 집단 의식에 매몰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저는 이 캐릭터를 조금씩 발전시켜 왔습니다. 감정과 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인물의 많은 것들을 특정하지 않아 감상자가 상상하고 구체화하여 완성되는 대상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누구든 감정이입할 수 있는 존재, 감상자가 캐릭터의 표정이나 눈빛을 상상하여 대입해 볼 수 있는 존재였으면 합니다.

제 작품에서 배경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려집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작품을 보는 이의 상상력이 모두 개입될 여지가 많은 공간과 상황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 있게 경험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영역의 것, 우리가 실제로 보고 느끼지 못한 공간, 또는 경험하고 느낄 수는 있으나 표현하기 힘든 감정과 분위기를 시각화하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인물뿐 아니라 배경의 ‘열려있음’ 역시 중요합니다. 상징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 그림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의도적으로 묘사가 충분하지 않은 공간, 벽면으로 막혀있고 평면적으로 보이는 공간, 중력이나 자연적 현상을 거스른 공간 등 모호한 배경을 다양하게 표현해 왔습니다.

인물의 동세로 대략적인 상황과 스토리를 알 수 있지만 얼굴과 표정이 묘사되지 않았기에 감상자가 인물의 자세한 상황과 감정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열려 있는 인물에 누구든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밀도 높은 묘사의 시각적 요소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배경적 모호함이 자유롭게 열린 해석을 유도하기를 바랍니다. 작가로서 저는 이와 같은 바람들을 품고 열심히, 즐겁게, 그리고 오래 작업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하고 그려낼 뿐입니다.//구경환//

장소 : 갤러리 이듬
일시 : 2023. 12. 01 – 2024.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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