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展(갤러리 이듬)_20231031

//평론//
다연 이경자 화백을 말한다

유재천 |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다연 이경자 화백을 처음 만난 것은 1952년 2월 22일이었다. 우리는 그때 학원 장학생 시험을 치르기 위해 대구에 있던 대양 출판사 (후에 학원사가 됨)에 모였다.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거쳐 우리는 12명이 뽑힌 제1기 학원 장학생이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이경자 화백과 나는 55년 동안 친구로 지내왔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 이경자양은 “우리나라의 여성은 약하나 여성의 한 사람인 나는 여류 시인이 되어 여성운동에 이바지하련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비록 여성운동에 투신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이경자양의 그 같은 희망은 화가로서 일생을 살아오는 데 두 가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나는 시인이 되겠다던 문학도의 꿈이 이경자 화백의 그림에 문학적 정취로 계속 녹아 있다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여성운동에 대한 의지가 현실 생활의 굴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계속 그림을 그리게 만든 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미술 문외한으로서 나는 다연의 그림들을 깊이 읽을 능력을 가지지 못했으나 ‘싯다르타’ 이후 ‘습지대’ 시리즈를 거쳐 야습관조에 이르는 화풍의 변화는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영감을 얻은 ‘싯다르타’에서 보여주듯 다연은 초기에 구도자의 풍모를 강하게 드러냈다. ‘싯다르타’의 구도와 관조의 형이상학에 매료되어 심취했던 초기 이경자의 그림들은 그 당시 그녀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삶의 질곡을 포용하면서 한 차원 승화된 세계로 나아 가려는 자신과의 싸움을 끈질기게 추구한 그림들은 유연함 속에 감추어진 그녀의 타협을 거부하는 매몰찬 의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다연의 성품은 끝내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그림을 고집하는 에너지로 현실화된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 같은 강한 의지가 뒷받침된 다연의 ‘싯다르타’가 추구한 구도정신은 어쩌면 그 시대를 사는 저항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경자의 그 당시의 그림은 붓질이 매우 강렬해 여성의 작품이라고 보이지 않게 만들기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뒤 ‘습지대’ 시리즈에서 다연은 대단한 변신을 보였다. ‘야습과 관조의 빛’ 은 그야말로 치열한 구도자의 길에서 ‘관조의 빛’에 눈 뜬 담담한 생명에의 외경에 다 다른 경지를 드러냈다. 늪의 쓸쓸한 아름다움을 수묵담채로 담아낸 자연의 화폭들은 분명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었다. 이 그림들 앞에 서면 나 자신이 늪가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황량한 늪이 다연의 붓끝에서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게 새로 태어나는지 경이로웠다. 높은 보이지 않게 생명을 잉태하고 소멸시키며 우주를 껴안는 것이다. 거기서 다연은 생명의 윤회와 더불 어 허무를 보는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연륜과 더불어 다연은 이순의 지혜를 체화 시킨 것이리라.

이제 다연 이경자 화백은 조금은 생경한 문학적 관념 또는 형이상학적 집착의 틀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순환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보다 체화된 추상의 세계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다연이 ‘허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보다 추상화된 화폭 속에서 생명의 꿈틀거림을 아름답게 관조하고 있다. 물과 함께 생명은 단생하고 소멸하며 순환되어 가는 과정과 같이 물을 소재로 한 다연 이경자 화백의 세계는 보다 더 근원적인 생명의 존재와 그 질서를 애정 어린 눈으로 그려갈 것이다.//유재천//

장소 : 갤러리 이듬
일시 : 2023. 10. 31 –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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